펀드환매 사태를 계기로 투신사 채권형펀드의 리스크관리가 도마위에 올랐다. 기업의 수익.재무구조에 대한 철저한 분석없이 신용평가사의 등급만 믿고 투자했다가 문제가 터지면 우왕좌왕하는 후진성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수익률(금리) 경쟁에만 매달린 결과 자산운용의 기본인 리스크관리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낙후된 투자시스템="SK글로벌 같은 회사가 또 나오면 어떡하죠"라는 질문에 A투신사 펀드매니저는 "그때도 지금처럼 앉아서 당해야 하겠지요"라고 솔직히 털어놨다. 투신사 채권펀드가 위험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는 셈이다. 즉 제2,제3의 SK쇼크가 터질 때마다 투신사들이 펀드환매를 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부 대형사를 제외한 중소형 투신의 채권 펀드매니저는 2∼3명이며 많아야 3∼5명에 그친다. 수조원의 채권펀드를 1∼2명이 맡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채권투자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으로 간주되는 기업의 부도 가능성에 대한 정밀분석 및 예측은 기대할 수 없다. 그나마 전문가가 있더라도 금리를 예측할 뿐이다. 김일선 투신협회 이사는 "IMF위기 전까지 보증채 중심으로 회사채시장이 굴러왔기 때문에 채권투자에서 기업을 분석하는 일은 필요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무보증채로 시장이 변한 지 5년이 지난 지금에도 당시 관행이 이어지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투신사들은 지금이라도 신용평가사의 등급에만 의존하지 말고 직접 기업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획일적인 펀드구조=투신사의 상품구조가 천편일률적이라는 점도 리스크관리의 허점으로 지적된다. 국내 투신사 채권펀드는 만기와 편입채권의 종류 및 포트폴리오,심지어 수익률까지 비슷비슷하다. 이같은 투신권 상품구조 하에서는 유행에 따라 특정 종류의 펀드에 돈이 대량으로 몰리고,문제가 터지면 한꺼번에 이탈하는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강창희 PCA투신 투자연구소장은 "똑같은 비즈니스모델을 갖고 있는 40여개 투신사들이 수탁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게 우리 투신시장의 현 주소"라면서 "선진국처럼 투신사별로 특색있는 전문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