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라크간의 전쟁 발발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이는 세계경제에 독(毒)이 될 것인가,아니면 약(藥)이 될 것인가. 지금까지 지배적인 견해는 세계경제의 회복지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는 쪽에 모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경제가 추가 경기둔화 조짐이 뚜렷하다. 벌써부터 이중침체(double-dip)에서 한단계 더 진전된 다중침체(multi-dip)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이 세계경제에 악재로 작용할 것임은 분명하다. 최악의 경우 중동전으로 비화돼 장기화되는 양상으로 전개되면 세계경제가 장기불황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행인 것은 미국과 이라크간의 전쟁 위험이 커져가는 과정에서 전쟁에 따른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완충장치도 많이 마련됐다는 점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공급해온 충분한 유동성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도 전쟁이 발발할 경우 가장 우려되는 유가급등을 막기 위해 원유공급을 늘릴 뜻을 계속 시사해왔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국민들의 정부 정책에 대한 관심도 되살아나고 있다. 이 점은 앞으로 세계경제 향방과 관련해 아주 중요하다. 그동안 세계 각국이 경기부양책을 추진했지만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국민들의 정책반응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미국과 이라크간의 전쟁이 발생하더라도 반드시 암울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특히 최근처럼 경제활동에 있어서 심리적 요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미·이라크 전쟁을 비관적으로 수용할 경우 세계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의외로 커질 수 있다. 그렇다면 미·이라크간 전쟁이 세계경제에 약이 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과거 비슷한 사건 이후 세계경제의 진전양상을 살펴보면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판단된다. 실제 1929년 대공황 당시도 요즘과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당시 '팍스 브리태니아(Pax-Britannia)'를 실현한 영국경제가 붕괴되면서 세계경제는 불황국면에 빠졌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세계 각국들의 이기주의로 보호무역의 파고가 높아지면서 불황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당시 세계 각국들은 대대적인 경기부양을 모색했다. 불행히도 경제주체들이 앞날을 불확실한 것으로 판단함에 따라 의도했던 효과는 얻지 못했다. 이런 불황의 고리를 차단했던 것이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1960년대 들어서도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 이후 베트남 특수에 힘입어 미국경제는 역사상 최장의 '케네디-존슨 호황시대'를 열었다. 90년대 들어서는 걸프전쟁을 통해 80년대 호황과정에서 누적된 과잉공급 문제를 해결하면서 다시 10년간의 장기호황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이번에도 10년간 장기호황 과정에서 재고가 누적된 상태다. 특히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미국경제의 성장세를 지탱해온 신(新)경제도 2000년 하반기 이후 재고누적으로 불안요인이 되고 있다. 결국 이런 각도에서 보면 이라크와의 전쟁이 미국경제의 아킬레스건을 해결해 줄 가능성도 높다. 그동안 미국은 '역발상 경제(reverse economy)'의 이점을 가장 잘 활용하는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불행히도 대외환경의 악재가 나타나면 우리 경제는 가장 큰 충격을 받는다. 올들어 미국과 이라크간의 전쟁위험,북한의 핵문제 등으로 인해 국내주가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큰 폭으로 떨어졌다. 각종 매체들도 세계 어느 국가보다 민감하게,그것도 현실보다 더 비관적으로 보도했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이제부터 우리 경제도 역발상 경제의 이점을 활용할 수 있는 국가가 될 수 있도록 외부환경에 대한 완충능력과 내부적인 역량을 길러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