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주말부터 이틀동안 미국 워싱턴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orld Bank) 연차총회가 열린다. 여러가지 안건이 논의될 것으로 보이나 우리가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은 대략 두 가지다. 하나는 IMF가 올해 남은 기간과 내년의 세계경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다. 다른 하나는 외환위기에 직면한 국가에 대해 기업처럼 파산보호를 신청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느냐 하는 점이다. 공식적인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는 이번 회의에 앞서 25일께 발표될 예정이다. 대체로 △경기저점은 지난 1·4분기라는 종전의 입장을 유지하되 △회복속도는 미국기업들의 분식회계 파동 등으로 4월 전망때보다 크게 둔화되지만 △최대 현안인 미국경제와 세계경제가 이중침체(double dip)에 빠질 가능성은 비교적 적다는 내용이 담겨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 만큼 이번 회의의 최대관심은 외환위기국이 파산보호를 신청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느냐에 쏠려 있다. 이미 이 방안은 지난해 11월 엔 크루거 IMF 수석부총재에 의해 처음 제시됐다. 크루거는 '위기에 직면한 국가가 기업처럼 파산보호를 신청할 경우 IMF의 부담을 줄이면서 위기국들이 최악의 상황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기업식 파산보호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현행 IMF의 헌장을 수정해야 하는 어려운 점을 들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 오히려 외환위기국의 주요 채권단이 파산보호를 신청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대부분 외환위기국의 채권단이 미 금융기관임을 감안하면 이런 미국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동안 IMF와 미국의 외환위기국에 대한 입장은 재원사정에 따라 크게 변해 왔다.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만 하더라도 외환위기 발생에 따른 인접국으로의 전염을 우선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신속지원의 원칙'을 지켰다. 물론 이런 입장은 IMF와 미국의 재정사정이 떠받쳐 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원칙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부시 행정부 이후부터다. 부시 행정부는 '외환위기국에 일방적으로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것은 또 다른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 있다'며 '외환위기는 위기를 낳게 한 당사국의 책임'이라는 '자기책임의 원칙'을 강조했다. 이같은 입장변화는 날로 악화되고 있는 미국의 재정사정이 감안된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자기책임의 원칙이 강조되면서 외환위기국이 사실상 방치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외환위기국들은 최악의 상황(유동성 위기→시스템 위기→실물경제 위축·국민생활난 가중)에 몰렸다. 일종의 부메랑 효과로 미국은 중남미에 대출해준 자국 금융기관들의 부실화가 우려되면서 증시가 크게 흔들렸다. 결국 미국은 최근 들어 외환위기국의 경제회생 여부를 중시해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선별지원의 원칙'을 취하게 됐다. 이것은 구제금융 지원에 따른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동시에 IMF와 미국의 부족한 재정사정을 감안한 조치로 풀이된다. 종전의 구제금융 지원원칙을 결합한 절충조치인 셈이다. 앞으로 외환위기국에 대한 IMF와 미국의 입장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IMF와 미국은 이번 연차총회를 통해 현행 IMF헌장을 고쳐 외환위기국의 파산보호를 허용하는 것과,미국이 원하는 채권단의 파산보호 신청이라는 두 가지 방안을 동시에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앞으로 IMF와 미국의 지원원칙은 기존의 '사후적'에서 '사전적' 조치로 중심이 변할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 이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개별국가들은 외환위기를 미리 감지할 수 있는 조기경보체제 구축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게 됐다. 차제에 우리나라도 효율적인 조기경보체제를 개발하고 그 효율성 여부를 반드시 점검해 놓을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