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MJ) 의원이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함으로써 10년전과 같은 '정풍'(政風)이 현대가(家)에 또다시 불어닥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그가 대주주이자 고문으로 활동중인 현대중공업은 그간 줄곧 정 의원의 정치활동과 회사와는 관계없다는 점을 강조해 왔지만 대선 출마가 공식화됨으로써 앞으로 세간의 의혹과 관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현대중공업은 지난 70년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조선소 부지로 쓰일 백사장 사진과 선박 설계도면,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 한장만을 갖고 외국 선주사와 은행을 설득, 첫 선박 수주와 조선소 설립을 위한 차관도입에 성공했다는 `불굴의 일화'로 태어난 회사. 지난 30여년간 세계 조선사(史)의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며 현재 조선소 규모나 선박 수주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한 이 회사는 올 초에는 현대미포조선 등 4개사와 함께 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또 지난 5월에는 국내 4위권 규모의 삼호중공업을 인수함으로써 자산규모 11조8천930억원(재계 13위), 세계 시장점유율 20%에 이르는 명실공히 세계 최대의 '중공업 전문그룹'으로 떠올라 주목을 받았다. 정 의원은 지난 75년 이 회사에 입사해 5년만인 80년에 상무, 82년 사장을 거쳐 87년 서른 일곱의 나이로 회장직에 올랐다. 그는 선종 다양화 및 사업영역 다각화를 적극적으로 추진, 회사가 제2차 오일쇼크의 후유증을 딛고 세계적인 종합 중공업체로 성장하는 기틀을 마련하는 등 당시 최고경영자(CEO)로서는 비교적 탄탄한 경영실적을 인정받았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88년 제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난 이후로는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자신은 고문직만 유지한 채 경영일선에서는 물러나 있는 상태다. 그러나 문제는 정 의원이 현재 현대중공업의 주식 11%(총 836만주, 시가 1천600억원)를 보유하고 있는 대주주라는 점. 정 의원은 `특정 기업의 대주주'라는 신분적 부담이 자신은 물론 회사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 어떻게든 지분을 처리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이것이 '정경유착(?)'에 대한 시장과 일반인들의 우려를 완전히 없앨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또 지분처리 문제와 더불어 회사가 음이든 양이든 정치적 목적으로 동원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점을 공식 천명한다 해도 이를 일반인들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여부도 좀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 현대중공업의 `부인'에도 불구, 정 의원의 대선출마가 가시화되면서 회사주변에서는 계동 사옥에 선거준비를 위한 사무실이 마련돼 일부 직원들이 관여하고 있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설'(說)들이 나돌기도 했다. 더욱이 최근 세계 경기침체와 선박 발주시장 위축, 이에 따른 수주부진, 선가 및 환율하락 등 조선업계의 악재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 의원의 출마 소식은 현대중공업의 주가에도 부담을 더해주고 있다. 연초 한때 3만6천원 이상을 오르내리던 이 회사 주가는 최근들어 `바닥'이라고 여겨졌던 2만원선 아래로까지 추락, 종합주가지수나 동종업계의 주가 하락폭에 비해낙폭이 지나치게 크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정 의원이 현대중공업과의 연결고리를 끊는다 해도 투자자들의 심리적 부담감을 지우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만약 정 의원이 대선에서 실패할 경우 후유증도 클 것이기 때문에 기업 이미지 측면에서는 결코 좋을 것이 없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측은 이러한 외부의 지적과 우려에 대해 "일절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특히 정 의원과 회사와의 관계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보고 정 의원의 대선출마 선언에 대해서도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는 등아예 정치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시대가 달라진 만큼 10년전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는 생각할 수도 없다"며 "평온하게 본연의 경영활동에만 충실할 뿐이며 회사가 어떻게 될지는 앞으로 지켜보면 될 것"이라고 느긋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현대 계열사 노조가 최근 잇따라 정 의원의 대선출마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등 내부에서도 회사의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 노조원은 "10년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대선출마 당시 겪었던 고통을 기억하는 직원들은 이번에도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며 "정 의원이 회사를 위해 아예 출마하지 않았으면 하는 의견도 상당수였다"고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윤영 기자 y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