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위아래를 막고 있는 요인들로 인해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8월 이후 형성된 1,180∼1,210원의 박스권은 견고함을 자랑하면서 방향성 제시에 인색하다. 위아래 제한된 장세는 시장 참가자들의 거래의지를 꺾어놓고 있다. 기본적으로 달러/엔 환율 역시 박스권 등락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모멘텀 제시여부는 불확실하다. 다만 9.11테러사태 1주년, 일촉즉발에 처한 미국의 이라크 공습, 30달러를 넘어선 유가 등 돌발 변수의 출현여부가 시장에 충격을 가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9월 둘째 주 환율(9.9∼9.13)은 기존 박스권이 유지되는 쪽으로 견해가 기울어 있다. 아직까지 환율을 흔들어 놓을 변수는 부각되지 않고 있다는 시각. 당일 달러/엔의 움직임이나 수급 상황을 반영한 박스권내 레벨 이동 정도가 가장 무난하다. 시계(視界)제로 상태의 미국 증시나 경제회복 여부가 달러화와 맺은 연결고리가 어떻게 작동할 지가 관심사다. 수급상 특별하게 부각된 요인은 없다. 특정레벨에 포진된 대기수요나 매물이 당일 등락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물가불안에 따른 당국의 환율 상승에 대한 거부감이나 추석을 앞두고 자금수요가 있는 업체들의 네고물량 공급 여부도 변수로서 작용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 탈출구 막힌 장세 = 한경닷컴이 은행권 외환딜러 17명을 대상으로 환율전망을 조사한 결과, 예상 환율의 저점은 단순평균으로 1,185.24원, 고점은 1,206.53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주 장중 저점인 1,190.00원과 고점인 1,207.80원에서 약간 하회한 수준. 조사결과, 아래쪽으로 각각 6명이 '1,190원'과 '1,184∼1,185원'을 저점으로 지목, 지난 주 굳건하게 지지됐던 1,190원에 대한 지지력 테스트가 있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이어 5명이 박스권 하단인 '1,180원'까지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위쪽으로는 8명의 딜러가 '1,205∼1,206원'을, 이어 7명이 '1,210원'을 고점으로 지목, 박스권 상단인 1,210원을 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어 2명이 '1,200원'을 상승의 한계로 예측했다. 박스권 상하단 주변부에 걸친 전망치는 '탈출구가 없다'는 시장 장세를 대변하고 있다. ◆ 지난 주, 1190원대 하향 = 앞선 주만 해도 종가기준 1,200원대를 지탱했던 장세는 월초를 맞아 추가 상승 기대감이 있었음에도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대외여건의 변화로 1,190원대로 내려섰던 것. 달러/엔 환율이 미국 경기 퇴보에 대한 우려감으로 주 중반까지 차츰 가라앉자 달러/원은 일정부분 이를 반영했다. 그러나 원화환율이 내부 수급상황으로 인해 엔화환율의 반영 정도가 크지 않아 지난 4일 엔/원 환율은 서울 외국환중개 고시기준 1,025.16원까지 급등, 6개월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주중 역외선물환(NDF)정산관련 역내매도세 가중과 업체 네고물량 등이 환율을 큰 폭으로 밀어냈다. 지난 목요일 장중 1,190.00원까지 하락했던 환율은 주말을 앞두고 달러/엔 상승과 결제우위를 바탕으로 반등, 1,196.80원에 한 주를 마무리했다. ◆ 달러/엔 방향성 염탐 = 미국 달러화의 향방은 '오리무중'이다. 미국 경제지표는 부진의 늪에 허덕이고 있으며 뉴욕 증시 또한 회복여부가 불투명하다. 불확실성과 불안이 미국 경제를 잠식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이라크 공습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소식도 추를 한쪽으로 기울게 할 뇌관으로 잠재돼 있다. 최근 미국 공급관리자협회(ISM)가 발표한 8월 서비스업 지수는 50.09로 전달(53.1)은 물론 예상치(54.0)보다 밑돌며 지난 1월(49.6) 이래 최저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앞서 ISM 8월 제조업 지수도 50.5로 올들어 최저치로 추락한 바 있다. 미국 제조업은 물론 서비스 부문도 가파른 하강곡선을 그리면서 미국 경제가 총체적 어려움에 처해있다는 점이 부각됐다. 또 지난 3월 110.7까지 치솟았던 소비자신뢰지수는 8월 93.5로 꼬꾸라졌으며 2분기 노동생산성도 1.5%(1분기 8.4%)로 급락했다. 그러나 주택시장이 견조한 모습을 보이고 지난 6일 8월 실업률이 전달보다 0.2%포인트 하락한 5.7%로 당초 예상치(5.9%)를 밑돌아 지난 3월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달러/엔은 이에 따라 지난 주말 118.55엔으로 뉴욕 종가기준으로 주중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라섰다. 향후 방향에 대해선 쉽사리 예측이 어려운 상황. 다만 미국 경기 악화에 대한 우려감이 상존, 위로 반등여지가 크지 않고 하락 위험이 더 크다는 점이 제기되고 있다. 엔화의 경우 일본 닛케이지수가 9,000선 붕괴 위험에 처하는 등 약세 조짐이 부각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경제와 일본 경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 '나쁘다'는 것을 경쟁하고 있는 형국에서 통화간 우열은 쉽게 기울지 못하고 있는 상황. 달러/엔의 추가 등락방향은 뉴욕 증시나 경제지표 등을 반영할 전망이나 돌발 변수의 출현 가능성을 무시하기 어렵다. 이번 주 후반 미국의 2/4분기 경상수지, 소매판매, 소비자체감지수 등의 발표가 달러화 가치변동에 영향을 가할 전망이다. 외국계은행의 한 딜러는 "달러/엔 자체가 117∼120엔의 박스권이며 양쪽으로 옵션이 많이 묶여 있어 큰 이슈가 없으면 이를 빠져나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모멘텀을 보여줘(Show us the 'Momentum) = 박스권 탈피의 갈망을 품고 있는 시장 참여자들에게 모멘텀 출현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존재다. 모멘텀은 달러/엔에서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시장 참가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달러/엔 역시 최근 117∼120엔의 박스권에서 자리이동만 하고 있는 상태다. 달러/원의 정체와 맞물린 부분. 다만 최근 국제정세 등이 예사롭지 않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이라크 공격에 나설 경우 달러는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위험 회피 목적으로 미국 자본유입이 축소될 가능성 때문.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9.11테러사태 1주년이 낀 주이고 이라크 공습에 대한 구체성이 드러나는 변수의 진행여부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계은행의 다른 딜러는 "이라크 공습에 대한 소문이 계속 돌고 있으며 달러/엔의 상승모멘텀이 없다"며 "9.11을 전후로 달러 하락 압력이 본격화되는 시점이 언제인가에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반대의견도 있다. 다른 은행의 딜러는 "미국도 좋지 않으나 일본 경제가 더 나쁜 점이 부가될 가능성이 크다"며 "달러/엔은 117엔을 뚫고 내리기 힘들 것 같고 119엔대 상향을 시도할 것 같다"고 예상했다. 유가 급등도 또 하나의 변수가 될 가능성도 있다. 지난주 말 10월물 서부텍사스중질유(WTI) 가 30억달러에 근접하는 등 업체 결제수요가 꾸준하게 유입될 수 있다. 최근 1,190원대 하향돌파를 막은 것도 결제수요다. 지난 5일 맺은 우리금융그룹이 미국계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로부터 13억달러 정도를 유치했으나 이는 우리은행 등이 갖고 있는 부실자산 정리에 사용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 관계자는 "9월중 2억5,000만달 가량 납입될 예정이다"며 "그러나 이를 외환시장에 영향이 미치지 않는 스왑으로 처리하기로 했다"고 언급했다. 수급상 두드러진 것은 없다. ◆ 엔/원 조정 가능성 = 엔/원 환율은 지난 4일 서울 외국환중개 고시기준 100엔당 1,025.16원까지 치솟아 지난 3월12일 1,027.63원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한 바 있다. 이후 다소 조정을 보이고 있는 엔/원은 당분간 100엔당 1,010원을 축으로 등락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업체들은 금리가 낮은 엔화로 대출하는 사례가 많이 늘어 이를 원화로 환전함에 따라 달러/원의 경우 매도포지션이 생기게된다. 그러나 시장에 달러공급이 충분치 않아 포지션을 커버하는 과정에서 달러/원과 달러/엔의 괴리감이 강화된 것. 서울 외환시장의 공급이 원활치 않다면 두 통화는 방향은 같이하되 속도면에서 차이가 날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한경닷컴 이준수기자 jslyd0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