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이 발레니우스(WWL)-현대자동차 컨소시엄에 자동차운송사업 매각을 앞두고 채권단에 매각대금 중 3천억원을 달라고 요청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7일 "현대상선이 총 13억달러(선박금융 2억달러 제외)의 매각대금 중 올 하반기 만기도래하는 회사채와 금융기관 차입금 상환분을 제외한 3천억원 정도를 넘겨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매각대금 전액을 차입금 상환에 써야 한다는 채권단 일부의 주장도 만만치 않다"며 "현대상선에 대한 대금 제공 여부와 규모는 채권단 운영위원회를 통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왜 3천억원인가 현대상선은 매각대금이 모두 부채상환에 사용될 경우 장차 경영의 불확실성에 대비할 수 있는 '실탄'이 모자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나아가 매각대금이 자칫 채권단의 '빚잔치'로 전락할 경우 구조조정 효과를 반감시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상선은 올 상반기 흑자를 달성했지만 지난 2000년과 2001년 두해에 걸쳐 무려 6천3백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냈기 때문에 만성적인 현금부족 상태에 시달려왔다. 지난해 산업은행 등으로부터 6천8백억원 상당의 회사채 신속인수 지원을 받은데 이어 올 들어서도 2천억원을 지원받아야 했다. 이 가운데 1천억원은 지난 6월말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회장 겸 현대상선 이사의 개인보증을 받아 충당하기도 했다. 회사 관계자는 "자동차선단을 매각하면 회사의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수익성 제고와 노후선박 교체비용 조달 등에 대응하기 위해 3천억원 정도의 현금은 확보해놓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상선 독자생존 가능한가 상선은 이번에 연간 순익 1천5백억원 이상을 올리던 '캐시 카우'였던 자동차 선단을 떼어내 수익구조를 전면 재편해야 할 부담을 안게됐다. 하지만 세계 해운경기가 좀처럼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걸림돌이다. 최근 컨테이너 운송가격이 소폭 오르긴 했지만 경상이익을 낼 정도는 못된다. 실제로 지난 1·4분기에 3백7억원의 순이익을 올린 것도 주력인 컨테이너 부문이 아니라 자동차선 LNG선 등의 호조에 힘입은 것이었다. 금융권 부채가 2조3천억원에서 1조3천억원 정도로 줄어들지만 확실한 주력사업이 없는 상태에서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규모다. ◆정몽헌 회장 부담 덜었나 정 회장은 이번 매각으로 지난 6월의 개인보증은 일단 해소된다. 또 상선의 구조조정을 주도함으로써 나름대로 재기의 발판도 마련했다는 평을 얻고 있다. 하지만 정 회장이 당장 경영 전면에 나서기엔 해결해야 할 사안들이 많이 남아있다. 우선 상선을 비롯해 종합상사 택배 아산 등 옛 현대계열사들의 흑자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올들어 여건이 호전되고는 있지만 이들 기업은 상당히 취약한 재무구조를 안고 있다. 특히 아산의 경우 외자유치 등 특단의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경영개선이 어려운 상태여서 정 회장의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정 회장으로서는 일단 상선 조기정상화가 독자경영능력을 검증받을 수 있는 시험대인 것이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