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 박스권이 아래로 넓어졌다. 당초 760~820대의 박스권의 하단이 붕괴되면서 변동성이 커진 탓이다. 대한민국 대표주 삼성전자가 실적 모멘텀 점화에 실패하면서 시장은 외부 충격에 취약한 모습을 재연했다. 중기적 바닥권으로 인식된 700선이 가까워 질수록 반등 기대감은 강화되고 있지만 시장을 이끌어갈 매수주체가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기관이 프로그램 매매에 치중하는 양상이고 개인이 그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외국인의 현물 매도세가 강하지 않지만 선물시장에서의 투기적 단기 매매가 장중 변동폭을 확대중이다. 미국 뮤추얼펀드 자금이 지난주 184억달러 대규모 순유출을 기록하며 9주 연속 감소하는 등 주식 투자메리트 감소 분위기도 부담이다. 미국 시장에 비해 국내는 IMF를 거치며 비교적 투명한 회계 관행이 정착됐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다. 환율 하락 우려가 있지만 기업실적이 아직까지는 괜찮다는 점에서 700선 부근에서의 가격메리트 논리가 유지되고 있다. 미국 시장 안정이 선행될 경우 지수 복원 시도가 예상된다. 그러나 강한 상승세를 이끌 모멘텀이 없다는 점이 시장 참여자의 적극적 대응을 제한하는 상황이다. ◆ 삼성전자 빛바랜 분기 최대 실적= 삼성전자가 분기와 반기 최대 실적을 내놓았지만 시장 반응은 냉담했다. 시장의 기대수준이 애초에 너무 높은 탓에 LG전자, SK텔레콤에 이어 실적호조가 먹히지 않는 전철을 밟았다. 삼성전자는 2/4분기 매출액이 9조,9,400억원으로 전분기에 비해 소폭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1조 8,700억원으로 전분기보다 10.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시장은 2분기 영업이익이 2조원 이상을 기록하며 전분기를 소폭 넘어서는 수준일 것으로 기대했던 터라 실망감이 컸다. 삼성전자는 이날 4.34% 급락하며 34만원선으로 밀렸다. 달러/원 환율이 1,170원까지 하락하는 등 원화강세와 통신 및 TFT-LCD 마진 하락으로 3분기 실적이 2분기 보다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도 여전한 한계로 남아있다. 삼성전자의 하반기 경영계획은 달러/원 환율 1,150원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나 원화가치가 달러당 100원이 절상될 경우 순익 1조2,500억원 가량이 감소하는 영향을 받는다고 계상했다. 현대증권 우동제 반도체팀장은 "단기적으로 D램가격 반등 둔화와 3분기 실적 우려로 주가상승 모멘텀이 제한될 것”으로 전망했다. LG투자증권의 강현철 책임연구원은 “기업체의 3분기 수익성이 환율 하락으로 급격한 악화가 예상돼 하반기 실적 호조라는 그간의 대세가 무산될 지경”이라고 말했다. 강 연구원은 “삼성전자 등 우량업체는 상반기 수준으로 버티겠지만 하이닉스 등 그간 실적이 안좋았던 업체가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점진적인 상승트랜드가 기대되고 있지만 최근 급등세를 나타냈던 DDR D램 반도체 가격 상승세가 주춤해진 것도 반도체주에 우호적이지 않다. ◆ 700선 지지기대 여전 = 다음주초 추가하락 가능성도 있지만 주중반 이후에는 한차례 반등 시도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됐다. 프로그램 차익잔고의 대규모 청산으로 기관의 매수여력이 커져 외국인의 선물 매매 방향에 따라 ‘프로그램 반등’도 가능하다는 것. 미국시장이 급반등할 가능성은 적지만 회계비리의 해결방안을 모색중이고 주가 급락으로 기업실적 악재도 어느정도 반영된 분위기라는 지적이다. 현대증권 엄준호 연구원은 “이날 지수 급락은 700에서 800까지 올라온 이후 외국인 참여가 줄면서 프로그램 매매로 주가급등락이 나타났던 것의 연장선상”이라며 “미국의 회계비리가 재무제표 재공시로 일단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으로 보여 다음주 국내 시장은 반등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엄 연구원은 “특별한 이벤트는 없지만 국내외 기업실적이 괜찮고 외국인 매도가 약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지난 700선 부근에서 강하게 반등한 양상이 되풀이될 수 있다”며 “다만 미국 재무제표 재공시로 순익감소라는 충격이 남아 반등폭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증권 유욱재 수석연구원은 “미국시장의 기업 신뢰성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어 국내시장도 당분간 영향권을 벗어나긴 힘들지만 미국시장이 바닥만 확인하면 상승가닥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연구원은 “다음주 지수를 마냥 아래쪽으로 보기는 힘들고 외국인이 매도와 매수를 급하게 오가는 양상이 나타나며 일중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며 “빠질 때 사고 오를 때 팔면서 박스권을 기존 750~810에서 700~830으로 넓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교보증권 임노중 책임연구원은 "700선 지지는 기대되지만 외국인이 선물시장에서 그간 누적 순매수를 털고 소폭이나마 순매도 포지션으로 잡았고 주말 미국 시장 반등 가능성도 낮아 다음주초 조정 연장 가능성이 우세하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한정진기자 jj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