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이 심리적인 공황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미국발 악재와 국내의 수급불안이 겹치면서 무차별적인 투매현상이 빚어졌다. 700선에 턱걸이 한 거래소시장에서는 하락종목(7백88개)과 하한가종목(1백28개)이 올들어 가장 많았다. 8% 이상 폭락한 코스닥시장에선 주가가 떨어진 7백71개 종목중 절반 가량인 3백81개가 가격제한폭까지 급락했다. 이날 하루에만 거래소 21조6천억원, 코스닥 4조1천억원 등 모두 25조7천억여원의 시가총액이 사라졌다. 주가.금리.환율의 동반급락으로 미국발 금융위기 가능성까지 대두되고 있다. 일부 증시전문가들 사이에 '대세상승의 추세가 꺾였다'는 주장이 대두되는 가운데 '우량주를 저가매수할 수 있는 기회'라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 연달아 터져나오는 악재 국내 증시의 펀더멘털(기초여건)과 기업실적이 꾸준히 좋아지는 가운데 미국발 '외풍'(外風)이 '발목'을 잡는 양상이다. 대규모 회계조작과 실적악화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미 증시는 전날 반도체메이커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8월 결산법인)의 3분기(3∼5월) 적자소식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마이크론의 '태풍'에 삼성전자가 9% 가까이 폭락하는 등 반도체주가 맥없이 추락했다. 소비심리를 나타내주는 컨퍼런스보드의 6월 소비자신뢰지수가 지난 2월(95.0) 이후 최저치인 106.4로 낮아진 점도 경기회복 지연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여기에 미국 2위의 장거리 전화업체인 월드컴의 회계 조작이라는 대형 악재까지 겹쳤다. 월드컴의 악재는 SK텔레콤 KTF 등 국내 통신주에 '직격탄'을 날렸다. 악재의 홍수속에 원·달러 환율과 금리가 동반 약세를 보이면서 주식의 투자 메리트를 한층 떨어뜨렸다. 특히 급격한 환율 하락세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표기업들의 실적을 크게 악화시키는 '복병'으로 우려되고 있다. ◆ 국내 수급불안 일부 기관투자가의 로스컷(loss cut:손절매) 물량 출회가 수급악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은행.보험.투자자문사 등에서 추가손실을 피하기 위해 쏟아내는 손절매 물량이 증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실제 거래소시장에서 은행권은 지난 12일부터 이날까지 10일 연속 매도우위를 보였다. 이달 들어 주식을 순매수한 날이 단 하루(11일)에 불과했다. 보험도 지난 21일부터 나흘째 매도공세를 취했다. 최근에는 증권쪽에서도 물량이 꾸준히 흘러나오고 있다. 증권전문가들은 은행과 보험사는 투신및 증권사에 비해 로스컷 규정이 비교적 철저히 지켜지기 때문에 최근 주가 폭락으로 손절매 물량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으로 분석했다. ◆ 전망과 투자전략 전문가들은 미 증시가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국내 증시도 당분간 하락이나 횡보 등 조정국면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SK증권 이충식 상무는 "미 증시 불안으로 700선이 붕괴될 가능성이 있지만 단기낙폭이 지나쳤기 때문에 추가 하락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상무는 "기술주보다는 미 증시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내수 우량주 위주의 투자전략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