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액이 지속적으로 증가, 지난 15일 현재 1천1백5억1천7백만달러로 보름새 8억8천7백만달러 늘어났다고 한국은행이 17일 발표했다. 국가별 외환보유액 순위는 5위로 아직 변동이 없지만 4위인 홍콩과의 격차는 보름 만에 13억달러에서 8억달러로 좁혀졌다. 이런 추세를 감안하면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연내 홍콩을 제치고 4위가 될 것으로 점쳐진다. 1997년 말 외환보유액이 바닥 수준으로 떨어져 경제위기에 내몰렸던 것과 정반대 상황이다. 일각에서 외환보유액이 적정수준을 넘어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될 정도다. 정부가 최근의 원화환율 급락 장세에도 불구,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적극 매입해 환율하락 속도를 조절하지 못한 것은 과도한 외환보유액에 발목을 붙잡혔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 늘어나는 외환보유액 =지난 97년 말 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39억4천만달러에 불과했다. 외국인들은 달러를 계속해서 빼내갔고,그 바람에 국가 부도 일보 직전까지 내몰렸다. 홍역을 치른 한국 정부는 그 후 계속해서 외환보유액을 늘려 나가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에는 외환보유액이 1천억달러를 넘어섰고 이제는 당당히 보유 외환 규모에서 '세계 4강'을 넘보게 됐다. ◆ 적정 규모 논란 =국제통화기금(IMF)은 신흥시장국은 만기 1년 이내에 갚을 단기외채에다 위기 발생시 거주자들이 빼내갈 것으로 예상되는 자본유출 규모를 합해 그 이상을 보유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해외 자본유출 예상 규모는 고정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총통화(M2)의 10∼20%, 자유변동환율제 국가에서는 M2의 5∼10%로 추정한다. 여기에다 국가위험도를 곱해 산정한 한국의 외환보유액 최소 기준은 대략 6백32억8천만∼7백4억5천만달러. 그러나 한은은 외국인 증권투자자금 규모가 약 9백억달러에 달하고,주로 단기자금인 한국 기업의 해외 현지차입(약 2백억달러)을 감안하면 외환보유액이 많은게 아니라고 설명한다. ◆ 안정성이냐, 수익성이냐 =외환보유액은 국가경제적으로 '비상 식량'의 의미가 있다.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언제든지 현금화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한은은 외환보유액의 대부분을 미국 국채 등 안정성이 뛰어난 유가증권(6월15일 현재 85%)과 예치금(14%) 형태로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국채는 이자가 연 2.9~4.8%에 불과한 데다 최근에는 달러 약세로 인한 손해도 적지 않다. 유로나 엔화 자산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외환보유액 운용상품을 다양화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라며 "실제로 일부는 해외 위탁운용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이젠 투자도 생각할 때 =정부 일각에서는 싱가포르투자청(GIC)과 같은 반관반민 형태의 전문 투자기관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도 제기되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외환보유액 활용방안에 관한 내부 보고서에서 △국가 외채의 조기 상환 △공적자금 손실분중 정부부담분 충당 △펀드(약 2백억달러)를 조성한 뒤 그 이자로 산업경쟁력을 지원할 것 등을 제시했다.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논란이 많지만 경제 시스템의 안전망이라는 차원에서 아직은 외환보유액을 더 쌓고 안정성을 추구하는 정책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