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사태가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다. 최근 들어 세계은행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이 브라질 칠레 등 인접국으로의 전염 가능성인 이른바 데킬라 효과를 공식 경고하고 나섰다. 아르헨티나 사태가 최악의 사태를 맞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해말 아르헨티나 정부가 시중은행들의 예금잔고 유지와 자국내 자금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금융거래를 제한하는 조치에서 비롯됐다. ◆사태는 얼마나 심각한가=현재 아르헨티나 금융기관을 통해 거래가 가능한 금융행위로는 개인들은 예금잔고가 많다 하더라도 1주일에 2백50달러만 인출할 수 있다. 국제무역과 대출금 상환을 위한 거래 이외에는 모든 금융거래도 막혀 있다. 이에 따라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은 아르헨티나의 신용등급을 파산단계로 떨어뜨렸다. 금융거래를 하지 못하는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현 정부에 거세게 반발하면서 오히려 깊은 나락에 빠지고 있다. 이달 들어 아르헨티나 금융기관들의 예금잔고는 바닥이 난 상태다. 특히 외화예금보다는 페소화 예금사정이 더 심각하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자국의 금융기관을 더 믿지 못한다는 점을 시사해 주는 대목이다. 외환보유고도 급격한 해외자본 유출로 연초에 비해 무려 절반 이하로 감소됐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최근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아르헨티나 사태 등으로 갑작스럽게 시장의 패닉(panic) 현상이 자주 목격된다는 점이다. 보통 국제금융시장에서 패닉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헤지펀드들이 개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해결방안은 어떤 것이 있나=현 시점에서 아르헨티나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대책은 거의 없다. 이미 아르헨티나 정부는 국제적인 비난을 무릅쓰고 금리부담을 낮추기 위해 금리가 낮은 채권을 발행해 기존의 금리가 높은 채권을 대체하는 채무스와프를 취했으나 실패했다. 따라서 아르헨티나가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으로는 두가지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차제에 아르헨티나의 공식화폐(legal tender)를 페소화에서 미 달러화로 대체하는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과 자국통화인 페소화 가치를 대폭 평가절하시키는 방안이다. 불행히도 이 두가지 방안 모두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달러라이제이션의 경우 최대 현안인 예금인출과 외환보유고 고갈을 방지할 수 있고 현 정부가 역점을 둬 추진해 오고 있는 재정개혁을 지속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벌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문제는 페소화와 달러화 가치를 비교할 때 경상수지가 악화되고 경기가 더욱 침체되는 디플레 효과가 우려된다는 점이다. 특히 아르헨티나가 통화정책의 경우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맡겨야 됨에 따라 경제와 통화주권을 포기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페소화를 평가절하하는 문제도 수출경쟁력을 제고시키는 효과는 있지만 외채부담이 늘어나고 인플레 가능성이 높아질 우려가 있다. 더욱이 최근처럼 헤지펀드들의 활동이 다시 활발해지는 상황에서는 투기자금으로부터 집중적인 환투기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현재 아르헨티나 사태는 아르헨티나 정부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는 벗어난 상태다. 다시 말해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추가적인 지원을 받거나 이 지역에 영향력이 큰 미국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아르헨티나의 운명이 달려 있는 셈이다. 그러나 미국과 미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IMF는 최근 금융위기국에 대해 '자기책임의 원칙'을 강조하면서 자금지원에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앞으로 아르헨티나 사태가 인접국으로 확산된다 하더라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처럼 쉽게 해결되기 어려워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중요한 것은 우리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다행히 우리 경제는 외화사정이 괜찮고 외국인들이 주목해 지켜보고 있는 구조조정 문제도 완전치는 않지만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어 일단 전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더욱이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우리 국민들이 보여준 응집력과 화합 분위기가 외환위기 초기 당시처럼 국제금융시장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다. 앞으로 아르헨티나 사태가 인접국으로 확산된다 하더라도 오히려 우리 경제에는 반사적인 이익이 기대되는 이유다.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