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의 주요 원인중 하나로 꼽혔던 재벌들의 '황제식' 경영이 최근 다시 두드러지면서 이같은 행위가 지배구조 개선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국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30일 증권업계 및 재계에 따르면 삼성 이건희 회장 등 일부 재벌 총수들은 등기이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계열사 사장단 회의를 소집, 실적이 부진한 사장을 질타하고 앞으로의 경영방향을 제시하기도 하는 등 과거의 행태를 되풀이하고 있다. 재벌총수들의 이같은 경영행태에 대해 국내외 증권투자자들은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개선 노력이 후퇴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며 부정적인 인식을 하고 있다. 증권투자자들은 이런 한국 특유의 경영행태가 조속히 사라지지 않으면 기업의 가치가 저평가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지난 24, 25일 1박2일간 경기도 용인의 연수원에서 삼성생명.삼성증권.삼성화재.삼성카드.삼성투신운용.삼성캐피탈.삼성벤처투자 등 금융계열사 사장단회의를 열었다. 이 회장은 이들 금융 계열사에 이사직을 갖고 있지 않아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 삼성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1년 2차례정도 열리는 전체 사장단회의를 이 회장이 주재하고 있다"면서 "매주 수요일에 전체 계열사 사장단회의가 열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회장이 참석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회장은 최근의 금융계열사 사장단회의에서 카드부문의 과열경쟁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부작용을 지적했는데 이는 자사이익 극대화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개별 회사가 외면하기 쉬운 대목"이라면서 "이 회장의 간여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LG 구본무 회장은 지난 15∼21일 중국 출장길에 구자홍 LG전자 부회장, 노기호 LG화학 사장, 강유식 LG구조조정본부장을 대동했다. 구 회장은 LGCI, LGEI, LG칼텍스정유, LG카드, LG경영개발원 등의 등기이사로 등재돼 있으나 LG전자, LG화학 등 다른 계열사에 대한 경영권은 갖고 있지 않다. LG그룹의 계열사 사장들은 한달에 1∼2회정도 간담회 형식의 모임을 갖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재벌총수가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고 하더라도 전체 계열사의 경영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황제식 경영은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면서 "이같은 경영행태가 사라지지 않는 한 한국기업들은 저평가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기자 keunyo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