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장중 극심한 부침을 겪은 끝에 하루만에 하락 전환했다. 전날의 급등락 장세가 이어진 셈. 외환시장은 이날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장중 14원에 달하는 연중 최대 변동폭을 기록했다. 전날에 이어 역외매수세가 재가동하고 국책은행의 지지성 매수세가 환율 상승요인이었던 반면, 업체 네고물량은 꾸준히 공급돼 하락요인으로 상충됐다. 장 후반 박 승 한국은행 총재가 의외의 발언을 통해 환율의 급반락을 유도했다. 정부의 환율 방어의지와 엇갈려 손발이 맞지 않는다는 인상을 풍겼다. 2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전날보다 3.20원 내린 1,234.30원에 마감했다. 장중 고점은 1,243.00원이며 저점은 1,229.00원을 기록했다. 환율의 이동거리는 14.00원에 달해 전날 12.50원의 연중 최대폭을 경신했다. ◆ 위아래 제한 요인 상충 = 이날 역외와 국책은행 등의 매수세가 주도했던 1,240원대의 상승세는 차익실현 욕구와 함께 박 총재의 발언으로 급반락하는 등 시장은 혼조세를 거듭했다. 뚜렷하게 방향성이 드러나지 않은 채 시장은 살얼음판같은 장세를 보였다. 시장에 달러사자(비드)-팔자(오퍼) 주문이 얇은 상태에서 한 쪽이 강해질 경우, 쉽게 출렁거리는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시중에 물량은 있는데 개입으로 추정되는 역외매수가 이를 흡수하고 투자은행들도 이를 따라간 것 같다"며 "개입에 대해 설왕설래하는 분위기에서 박 총재의 발언이 달러되팔기(롱스탑)을 유도하게끔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와 한국은행의 손발이 맞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며 "내일은 개입여부와 함께 네고물량의 공급이 관건인데 1,240원은 저항선으로 작용할 것 같고 아래는 1,230원이 막힐 것"으로 예상했다. 외국계은행의 다른 딜러는 "어제 혼쭐이 난 터라 시장이 얇아 불안정하고 취약한 증세를 보였다"며 "역외와 국책은행 등의 매수세가 환율을 단숨에 올린 뒤 차익실현, 네고물량 등으로 상승폭을 조절하는 등 역외에서 주도한 장세였다"고 전했다. 그는 또 "장이 출혈이 많아졌으며 시장이 얇은 상태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여 앞으로 출렁거릴 가능성이 커졌다"며 "1,230원은 수성의 의지가 강하고 1,240원 위로 갈 그림도 아니되 월말네고 요인에 의해 약보합정도로 보고 싶다"고 예상했다. ◆ 외환당국 '하락 용인' =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역외매수세에 의해 상승 조정세를 타던 환율에 찬물을 끼얹었다. 박 총재는 케이블TV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환율은 현재 우리 경제상황을 그대로 반영한 것일 뿐 아직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며 "미국 경제 거품이 빠지면서 아시아경제와 불균형이 시정되는 과정에서 비롯된 전 세계적 현상이며 최근 환율 하락은 원화강세가 아닌 달러약세"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수출 경쟁력에 타격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점진적인 환율하락은 바람직하다"며 "당국이 시장에 관여하지 않고 시장에 따라 흐르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언급, 환율 하락용인을 시사했다. 외국계은행의 한 딜러는 "국책은행 중심의 방어가 이뤄지고 있는 시점에서 의외의 발언이었다"며 "발언 시점이 애매했으나 큰 의미를 둘 만한 발언은 아니다"고 전했다. 달러/엔 환율은 이날 보합권 등락에 그치며 달러/원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 전날 뉴욕에서 124.56엔을 기록한 달러/엔은 이날 124.37∼124.68엔을 오갔으며 오후 5시 26분 현재 124.51엔을 기록중이다. 일본 정부는 이날도 예외없이 구두개입에 나서 아래쪽을 지지했다. 국내 증시의 외국인은 거래소와 코스닥시장에서 각각 72억원, 4억원의 매수우위를 나타냈다. 최근 외환시장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난 변수다. ◆ 환율 움직임 및 기타지표 = 전날보다 3.50원 낮은 1,234원에 출발한 뒤 업체 네고물량으로 10시 11분경 이날 저점인 1,229.00원까지 흘러내렸다. 그러나 환율은 국책은행의 지지성 매수세가 무서운 기세로 득세, 10시 26분경 1,236.90원까지 치솟았다. 이후 환율은 1,235원선으로 내려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역외매수세의 가담으로 재반등, 11시경 상승세로 돌아선 뒤 11시 2분경 1,242원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고점매도 인식으로 차츰 반락한 환율은 1,236원선으로 내려앉은 뒤 1,236.10원으로 오전장을 마쳤다. 오전 마감가보다 0.60원 낮은 1,235.50원에 오후장을 연 환율은 은행권 매수세를 중심으로 상승 반전, 2시 17분경 1,241.00원까지 올라섰다. 그러나 매물에 밀려 1,237원선으로 반락했던 환율은 다시 매수 전환을 통해 2시 53분경 1,243.00원까지 되올랐다. 오전 마감가보다 0.60원 낮은 1,235.50원에 오후장을 연 환율은 역외매수세 재개와 네고물량이 맞서 1,240원을 경계로 시소했다. 환율은 2시 53분경 1,243.00원까지 고점을 높였다가 박 총재의 하락용인 발언으로 급반락, 4시 15분경 1,232.70원으로 미끄러졌다. 이후 환율은 1,233∼1,234원을 오가는 흐름을 보였다. 이날 현물 거래량은 서울외국환중개를 통해 21억3,620만달러, 한국자금중개를 통해 8억6,690만달러를 기록했으며 스왑은 각각 3억3,020만달러, 4억770만달러가 거래됐다. 30일 기준환율은 1,235.90원으로 고시된다. 한경닷컴 이준수기자 jslyd0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