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철 부총리의 환율 관련 발언이 최근 외환시장에서 단기적인 달러매도 기회로 활용되고 있다. 환율 하락 속도를 늦추기 위한 '의도성' 발언이지만 시장의 반응은 부총리 의도와 달리 작용하고 있다. 환율 하락에 따른 수출 타격도 시간차가 있다는 인식 때문에 조치를 준비중이라는 발언도 '시차의 위안'을 주고 있다. 특히 전 부총리는 환율 급락을 우려하는 발언 와중에 환율하락은 경제실상을 반영하는 것이라 말하고 국가신용등급 상향 가능성도 언급, 오히려 달러 매수쪽을 크게 약화시켰다. 또 5월중 수출도 두자리수 회복에 월간 무역수지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월말 네고장세를 맞은 시장에서 달러 팔자쪽의 공격성이 강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달러/원 환율은 27일 개장초 1,240원이 붕괴된 이래 장중 1,235원대까지 급락, 지난해 2월 21일 장중 1,232.50원까지 내려선 이래 15개월중 최저치까지 잇따라 경신하고 있다. ◆ 매도세 부추기는 전 부총리 = 전 부총리는 이날 오전장 후반 중앙 국민홍보위원회 연찬회 초청강연에서 "최근 원화가치 상승은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과 실물경제를 반영한 것"이라며 아래쪽으로 향한 방향에 대해서는 동의했다. 그러나 전 부총리는 "수출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하면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언급, 정부 차원의 대책이 논의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같은 발언에 따라 일시적인 시장의 달러되사기(숏커버)로 오전장 막판 소폭 반등하는 듯 했으나 오후 들면서 시장 참가자들이 달러매도로 돌아서면서 저점을 낮춘 흐름이 연출됐다. 외국계은행의 한 딜러는 "정부가 얘기하는 대책은 어차피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며 "전 부총리 발언도 환율 자체에 대한 언급이라기보다 경제현안을 설명하면서 곁가지로 나온 정도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전 부총리 발언은 달러매수(롱)를 들었다가 다시 이를 처분하게 하고 있다"며 "환율 하락 속도를 조절하기보다는 역작용을 낳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가 직접 개입 없이 구두개입만 거듭함에 따라 내성이 길러질 대로 길러진 데다 환율이 연일 하락하는 데도 정부의 조치가 미흡한 것은 환율 하락 분위기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특히 전반적인 달러 약세 분위기에다 월말 네고 장세로 접어들면서 수급까지 공급우위로 확실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정부의 구두개입으로 잠시 달러가 오를 때 오히려 매도세력이 적극성을 띠게 된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전 부총리는 "조만간 피치가 한국 신용등급을 조정할 것이지만 그 시기는 이달을 넘길 것"이라며 "S&P는 오는 8월에 방한, 실사작업을 벌인뒤 10∼11월에 신용등급을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 원화 강세의 요인을 더욱 강화시켰다. 이같은 전 부총리의 발언은 환율 하락 속도에 대한 경계감 조장 속에서도 펀더멘털, 무역흑자 확대, 신용등급 상향 등의 원화 강세요인을 지지함으로써 '달러매도'가 편하다는 인식을 강화시켜 준 셈이다. 지난 24일에도 전 부총리는 환율 하락속도에 '상당한 우려'를 거듭 표명하는 한편 "달러화 약세 기조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이날 국가신용등급 상향 가능성 발언이나 5월중 무역수지 흑자 가능성은 달러 약세가 지속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앞선 발언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 직접 개입의 어려움 = 시장에서는 이날 정부가 국책은행과 공기업 등을 동원한 시중 물량 흡수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지지성 매수세가 강하지 않은데다 달러가 넘쳐나고 있는 상황에서 수급과 대세를 거스르는 '진압'에 나서기엔 무리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잉여물량이 계속 남으면서 이월되기 때문에 정부가 10∼20억달러를 동원해도 2∼3일 효과에 그칠 수도 있어 적극적인 개입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며 "현재 계절적으로 수요요인이 부각될 시기가 아닌데다 하락이 계속되다보니 미리 물량을 앞당겨 내놓고 있어 수급불균형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은행의 한 딜러는 "알게 모르게 국책은행 등이 물량을 흡수하고 있으나 크게 그 규모가 크지 않다"며 "공기업을 동원한 매수여부도 아직 뚜렷한 합의나 준비가 안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또 이날 25일까지 수출이 두 자릿수 증가율을 유지하고 있는데다 무역수지가 7억5,900만달러 흑자를 기록, 지난 4월과 지난해 같은 기간의 3억9,700만달러 적자나 1억1,600만달러 흑자에서 크게 개선됐음을 보여줬다. 이는 시장에 달러공급이 확대될 여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 외국계은행의 한 딜러는 "25일까지 무역수지 흑자가 크게 개선돼 이번 달에는 20억달러에 가까운 흑자를 기록할 가능성도 있다"며 "공급요인이 강화될 여지가 충분하다"고 진단했다. 특히 이날 달러/엔과의 연동성이 약해진 상황에서 월말을 앞둔 네고물량 공급이 만만치 않은데다 아직까지는 환율 하락이 수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시장에 부각되지 않고 있다. 시티살로먼스미스바니(SSB)증권은 이날 "원화 강세로 인한 수출회복이 지연될 것이란 우려보다는 소비 호조세에 주목해야 한다"며 "국내 경기는 소비 호조세로 여전히 견고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전반적인 구조의 변화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경닷컴 이준수기자 jslyd0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