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 이사회에서 매각협상안이 부결됨에 따라 하이닉스는 이제 독자생존의 길을 걷게 될 전망이다. 이사들은 매각조건이 불리할 뿐아니라 메모리부문 매각후 잔존법인이 생존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하이닉스는 이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포함해 자력으로 생존을 추진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됐다. 그러나 매각의지가 꺾인 정부와 채권단이 부채탕감을 포함한 채무재조정 논의과정에서 얼마나 협조해줄지는 미지수다. 어쨌든 한국 정부의 강력한 매각의지를 이용해 과도한 요구를 내세우는 등 헐값인수를 추진하던 마이크론의 시도는 좌절됐다. 이로써 마이크론 하이닉스 인피니언 등 D램 업계의 2위 그룹 기업들간 합종연횡시도가 모두 원점으로 돌아간 만큼 이들간 경쟁이 다시 격화될 전망이다. 왜 부결됐나=하이닉스 이사회가 이날 협상안을 부결한 것은 채권단이 작성한 잔존법인 생존방안의 실현가능성이 낮다는 점이 제일 큰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적과 마이크론주가를 낙관적으로 예상한 반면 우발채무위험은 축소평가돼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매출액 7천억~8천억짜리 회사에 부채를 3조원이나 남겨놓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이사진이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이닉스반도체측에서는 올해 비메모리부문의 순영업현금흐름이 적자가 날 수도 있다고 봤지만 채권단이 내놓은 생존방안에서는 1조3천8백억원의 흑자로 계상됐다. 또 마이크론의 주가는 여전히 26달러대에 머물고 있지만 35달러로 계산됐다. 전반적으로 잔존회사의 부채부담능력이 2조5천억원 가량 과다계상됐다는 하이닉스 경영진의 지적을 이사들이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사들은 우발채무도 채권단 예상을 크게 초과해 회사의 미래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마이크론에 대한 손실보상 등 일부 항목이 낮게 평가됐으며 마이크론 주식처분시까지 자금부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거론됐다. 이사들은 회사측이 마련한 독자생존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올 하반기이후 IT(정보기술)경기가 회복될 경우 다시 한번 정상화에 도전해 볼만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독자생존 가능할까=하이닉스반도체가 독자생존에 성공하기 위한 절대 조건은 물론 D램 가격의 안정이다. 하이닉스 내부자료(독자생존 보고서)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올해와 내년 D램 평균가격(128메가 환산기준)이 4달러를 유지하면 독자생존이 가능하다. 이 경우 올해 매출 5조8천억원 투자 1조3천억원 차입금 상환 8천4백억원 등을 기록해 세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 1조원 이상 현금축적도 가능하다. 신규 자금지원없이 12인치 웨이퍼 팹(fab.반도체 일관생산라인) 투자도 할 수 있다. D램 평균가격이 3.3달러 수준으로 떨어지면 2조원 규모의 부채탕감(또는 출자전환)이 있어야 독자생존이 가능하다. 이 경우 올해와 내년에는 각각 4천억원과 5천억원 수준의 기말현금을 보유할 수 있지만 3조원의 차입금 상환이 돌아오는 2004년엔 2조2천억원의 현금부족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물론 12인치 투자의 재조정과 비메모리 사업부문의 분리및 외자유치(2억~5억달러) 등을 통해 2조7천억원의 새로운 현금을 만들어낸다는 전제하에서다. 올해 1.4분기 D램 평균가격은 128메가 환산기준으로 4.28달러.전분기보다 2배 이상 높다. 4월 들어선 4.8달러대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가파르게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29일 아시아 현물시장에서 거래된 128메가 D램 가격은 전날보다 3.84%가 하락,평균거래가격이 3.00달러에 턱걸이 했다. 고정거래가격도 한 차례 인하했다. D램 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 하이닉스의 독자생존과 관련해 최대 변수인 셈이다. 김성택.이심기 기자 idn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