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매각에 관한 양해각서(MOU)가 공개된 이후 고용보장, 부채탕감, 신규여신 조건 등을 놓고 소액주주와 노조는 물론 채권단 내부에서도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협상 결렬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저자세 협상으로 일관,지나치게 불리한 조건들을 수용했다는 주장이다. 노조는 파업도 불사한다는 강경 방침이고 잔존 법인의 금융부채중 5조원 가량을 탕감하는데 대해서도 소액주주들이 "그 정도 지원이면 독자생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채권단을 주도하고 있는 은행들도 신규여신 15억달러 문제로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 잔존법인 부채 탕감 =2억달러를 비메모리 부문(잔존법인)에 출자키로 한 마이크론은 대대적인 부채탕감을 요구했다. 현재 하이닉스의 금융권 부채는 6조5천억원에 달한다. 이번 매각을 통해 채권단이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은 대략 10억달러(1조3천억원).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금액 등 변수들이 많아 회수 금액을 확정적으로 알 수 없지만 최악과 최선의 중간지점을 선택해 계산하면 이같은 수치가 나온다. 마이크론은 채권단 회수금액 1조3천억원 남짓을 제외한 5조2천억원 가량을 전액 탕감해 달라고 요구해온 셈이다. 채권단 회수액이 '0'원이 될 경우에도 전액 손실처리하고 하이닉스에서 떠나달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현재 채권단은 이를 수용하려는 움직임이다. 그같은 요구를 수용한 채무재조정 방안이 이미 완성 단계에 있으며 오는 26일 개최될 채권금융기관 설명회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가뜩이나 채권단 회수 금액이 적다는 비판이 비등하던 터에 대대적인 부채탕감 약속마저 드러나자 "차라리 팔지 않는게 낫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하이닉스를 그대로 두고 부채 4조∼5조원을 탕감해 주면 하이닉스는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부상할 것"(하이닉스 살리기 국민운동연합회)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어 가고 있다. ◆ 고용보장 약속은 없다 =이덕훈 한빛은행장은 지난 22일 기자회견에서 "마이크론이 향후 2년간 메모리 부문 근로자의 85% 이상을 고용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MOU의 '근로자.노동문제' 조항에서는 '양수인(마이크론)의 고용제안을 받은 근로자의 85% 이상 및 실질적으로 모든 핵심 근로자(실사 후 당사자들이 함께 확정)에 의한 고용동의는 양수인의 거래완료 의무의 선행조건이 된다'고만 정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하이닉스 근로자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강압적으로 체결된 양해각서를 용인할 수 없으며 노조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강력히 투쟁하겠다"고 선언했다. ◆ 신규여신 안전장치 =하이닉스 메모리 부문이 마이크론으로 넘어가 마이크론코리아(가칭)로 변신하면 채권단은 15억달러를 대출해 줘야 한다. 이번 MOU에서는 보증없이 담보를 제공하되 담보가치가 높은 지식재산권을 제외하고 고정.재고자산만 내놓기로 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반도체 회사의 속성상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반도체경기가 악화되면 고정.재고자산의 담보가치는 '0원'에 가깝다"면서 "사실상 아무런 보장 장치 없이 대출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신규여신을 주기로 한 은행들은 내부 여신 심사 과정을 우려하고 있다. 부실에 따르는 책임추궁을 우려하는 사외이사들이 이사회에서 MOU 승인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한빛 외환 조흥은행 등 은행권 실무자들도 난감해하고 있다"며 "특히 외국인 대주주(코메르츠방크)가 여신심사권을 쥐고 있는 외환은행이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