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츠증권 고유선 연구위원은 국내 증권사에 몸담고 있는 유일한 여성 이코노미스트다. 얼마전 그에게 낭보가 찾아들었다. 오는 4월1일자로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하게 된다는 것. 통상 3년 정도 걸리는 과장승진기간을 1년여 앞당겨진 특진 케이스다. 증권업계 여성군단에 또다른 고속 승진 사례가 나타났다. 동양종금증권 국제금융팀 최선희 차장(43)이 지난 28일 부장 발령을 받은 것. 그 역시 차장이 된 지 2년반만에 특진한 경우다. 이러한 인사는 단순히 증권가 여성들이 승진 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보수적인 증권사 리서치팀이나 국제금융팀에 '여성 과장' '여성 부장'이라는 직함은 보기 드물었다. 국내 증권사나 투신사에도 업종을 담당하는 애널리스트나 영업일선에서 뛰는 브로커 중에는 중견간부급 이상의 여성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다. 하지만 기업금융이나 재무관리팀,펀드 운용쪽에선 여성이 이렇다 할 명함을 내밀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최근 여의도 증권가에는 눈길을 끌만한 '파격' 인사가 잇따라 단행되고 있다. 남성들이 독차지해온 분야에 여성 인력이 과장이나 부장급으로 기용되는 사례가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는 것. 지난달말 굿모닝증권의 IR(투자설명회)업무 담당자로 발탁된 김민선 과장(35)의 경우도 파격적인 채용에 해당한다. 벤처기업에는 여성 IR담당자도 상당수 있지만 국내 증권사중 IR 전담직원을 둔 곳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굿모닝증권 김 과장의 '이색 인사'도 그의 경력을 보면 금방 수긍이 가게 된다. 영국 유학파 출신으로 크레디리요네(CLSA)증권과 노무라증권서울지점 등 외국계 증권사에서 애널리스트로 활약했었다. 국내외 투자자들을 관리하는 업무에 '더 이상 제격일 수 없다'는 게 이 회사 도기권 사장의 설명이다. 여성 인력의 약진은 국내 투신업계에서도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해말 한국투신운용의 주식운용부 부본부장으로 영입된 박영화 부장(49)이 대표주자다. 미국 메릴린치증권 계열의 펀드그룹에서 일한 경력을 지닌 박 부본부장은 국내 투신업계에는 '고참 여성'으로 꼽힌다. 일선 영업라인에서는 여성 지점장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쌍용투자증권(현 굿모닝증권)에서 국내 증권업계 최초의 여성지점장이 탄생했다고 떠들썩하던 게 불과 수년 전 일이다. 이후 지난해 대우증권에서 이원규 삼풍지점장이 배출됐고 얼마전엔 세종증권에서 32세의 여성 지점장이 나왔다. 서울 강변지점을 맡고 있는 김옥순 지점장은 서울여상 출신으로 30대 초반 지점장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여의도 증권가에 불기 시작한 이러한 여성 돌풍은 남성들의 가치관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능력만 있다면' 여성 동료나 상사를 꺼리지 않는 남성 직원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고성연 기자 amaz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