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면 경영권에 집착하지 않겠다" 작년 9월 극동전선 최병철 사장은 이처럼 선언했다. 최 사장은 창업주의 사위로서 오너의 일가이다. 오너의 일가가 경영권을 포기하겠다고 밝힌 것은 좀처럼 듣기도,말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의 말은 증시에서 매우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세계최고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면"이라는 단서가 강한 이미지를 심어줬다. 세계에서 가장 제품을 잘 만드는 회사가 되면 막대한 이익을 내게 되고,그 이익은 주주들에게 돌아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세계최고를 지향하는 최 사장의 경영철학은 결국 주주의 이익증대로 귀결될 것이라는 점에서 증시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사실 극동전선은 흙 속에 묻힌 진주라고 할 수 있다. 우수한 실적과 뛰어난 재무구조에 비해 투자자들에게 덜 알려져 있다. 극동전선은 선박용 전선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업체다. 선박용 전선과 해양케이블 분야에서는 국내 시장의 50%,세계 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알짜기업이다. 회사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수출을 통해 달성하고 있다. 게다가 이 회사의 부채비율은 36%에 불과하다. 사실상 은행권 부채가 없는 무차입경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영업실적이 부진한 것도 아니다. 작년 경상이익은 전년보다 1백34% 늘어난 1백92억원. 당기순이익은 1백49억원으로 1백59% 증가했다. 자본금(1백25억원)보다 당기순이익이 훨씬 더 많다. 매출액은 1천3백56억원으로 전년보다 10%정도 늘어났다. 현대중공업에 주로 납품하는 까닭에 거래선이 비교적 안정돼 있다는 것도 장점중 하나다. 특히 선박용 케이블은 일반 케이블보다 40-50% 정도 높은 마진을 얻을 수 있다. 이 덕분에 지난 98년부터 줄곧 평균 10%이상의 견고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는 전선시장의 평균 성장률인 6.7%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주가의 움직임은 이같은 안정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 26일 종가는 2만5천1백원. 작년 9월 미국에서 테러가 발생했을 때 주가는 2만원대에서 1만7천9백원으로 떨어졌었다. 이후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며 2만5천원선에 올랐다. 각 이동평균선이 정배열상태를 보이면서 매력적인 차트를 형성하고 있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유망 종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뜻이다. 극동전선의 영업실적은 조선경기에 민감한 영향을 받는다. 선박용 전선수요는 조선 경기가 좌우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보면 극동전선의 올해와 내년 영업실적은 호조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 조선업체들이 향후 평균 8분기 물량을 수주해놓고 있다. 이 물량만으로도 올해와 내년에는 완전가동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안정적인 매출이 보장돼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이 회사가 국내시장에만 목을 매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화에도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세계 3위의 조선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시장에 대해 확고한 기반을 닦아놓고 있다. 중국 16개 조선소에 거의 전량 전선을 공급하고 있다. 중국 다롄에 아예 현지공장을 세웠다. 조선업종에 강한 유럽에도 판매법인을 설립해놓고 있다. 경쟁력 강화에 관한한 극동전선은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M&A(기업인수.합병)도 불사한다는 생각이다. 이 경우 경영권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직 경쟁력 확보를 통해 세계최고의 기업이 되겠다는 것. 극동전선의 이같은 의지는 구조조정의 와중에서도 연구소의 인원을 늘리고 연구기능을 강화시켰다는데서 읽을 수 있다. 국내외 기관은 물론 대학과도 기술제휴를 통해 우수한 기술을 확보해나가고 있다. 90년대 중반에 일찌기 근거리통신망에 들어가는 LAN용 케이블을 국산화한 것도 이같은 노력 덕이다. 생산기술연구원과 공동으로 독성이 적고 잘 타지않는 소방용 케이블을 국내 처음으로 개발했다. 서울대학교와 공동으로 내화특성 선박용 전선을 국산화하기도 했다. 극동전선의 경영에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선박용 전선이 주력제품인 까닭에 2004년이후의 영업전망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실제 국내조선업체들의 수주물량은 줄어드는 추세다. 기존에 수주해놓은 물량은 많지만 이후 수주물량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극동전선의 영업실적에도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그러나 극동측은 이같은 문제를 해외시장쪽에서 해결한다는 구상이다. 해외마케팅을 강화해 수출비중을 높이겠다는 것. 최사장의 "경영권포기를 불사한 M&A추진"의지도 바로 이같은 계획에서 비롯됐다. 이와 함께 통신용케이블시장의 확대를 기회로 LAN용 케이블의 판매를 적극 확대할 생각이다. 작년 매출비중이 14%에 머물렀던 통신용 케이블의 판매비중을 높여 선박용 케이블에 편중된현재 매출구조를 시정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극동전선은 올해 당기순이익 목표를 1백65억원으로 잡고 있다. 작년보다 10%정도 늘려 잡았다. 선박용 전선이라는 주력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제품다각화에 주력해 순이익 규모를 꾸준히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업종의 특성상 급격한 실적변화가 없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으나 안정적인 재무구조와 탄탄한 영업력을 감안할 경우 주가는 저평가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올해 실적이 대폭 호전됐다는 것이 주가에 반영될 경우 상승탄력이 클 것"이라고 진단했다. 조주현기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