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월1일부터 일상생활에서 유로화가 사용되기 시작한 지 벌써 두달이 지나고 있다. 3월1일부터는 공식적인 법화(legal tender)로서 유로화만 통용되고 기존의 회원국 통화인 마르크라든지 프랑 등은 퇴장된다. 지금까지 나타난 상황을 감안해 본다면 유로화 사용시 비용이 크게 절감되고 이에따라 유로랜드 주민들의 인식이 좋아져 빠른 속도로 기존의 회원국 통화를 대체해 나가고 있다. 대부분의 회원국에서는 유로화 사용비중이 50%를 웃돌고 있고 프랑스 독일 등 유로랜드의 중심국가에서는 그 비중이 65%에 달하고 있는 상태다. ◇단일통화로서 유로화는 성공작=유로화의 일상생활 통용은 일단 '성공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동안 우려됐던 유로화 가치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한때 0.80달러대까지 떨어져 2류 통화로 전락할 위기에 몰렸던 유로화는 최근 0.88∼0.90달러대로 비교적 안정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유로화가 이처럼 빠르게 정착됨에 따라 그동안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영국 스웨덴 덴마크도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 유로랜드에 가입할 의사를 나타내고 있어 주목된다. 특히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영국 국민들이 자국의 유로랜드 가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는 점이 향후 유로랜드의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더욱이 현재 유럽연합(EU) 가입을 위해 폴란드 체코 헝가리와 진행되고 있는 정부간 협의(IGC)도 빠르게 진전되고 있어 올해 안에 확정된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유로랜드는 앞으로 러시아의 일부 지역과 북부 아프리카로 권역(圈域)이 확대되면서 '범(汎)유럽경제권'으로 확대 발전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늘고 있다. ◇지역별 공동화폐 도입 논의 촉진=이런 예상이 실현된다면 21세기 국제통화 질서에 큰 변화가 올 수밖에 없다. 특히 공동화폐 도입 논의를 촉진시킬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최근 들어 아르헨티나 사태가 베네수엘라 우루과이 등 인접지역으로 확산되면서 공식적인 채택여부와 관계없이 중남미 지역에서 미 달러화 사용이 보편화되고 있다. 시중은행 예금의 경우 미 달러화 예금이 70%를 넘어 실질적인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이 이뤄지고 있는 상태다. 이처럼 유로화가 빠르게 정착되고 달러라이제이션이 확산됨에 따라 이에 크게 자극받은 동아시아 지역내에서도 공동화폐 도입 논의가 촉진되고 있다. 이미 올들어 서울에서 열린 ASEM 고베 연구 프로젝트 회의에서는 동아시아 지역내 공동화폐 도입 등의 연구과제를 수행할 싱크탱크를 만들자는데 합의했다. 앞으로 이 기구를 통해 동아시아 지역에 단일통화가 도입될 경우 유로화 경로를 걸을 가능성이 높다. 아시아 단일통화 도입 전단계로 아시아통화제도(AMS)에 의해 각국간 통화가치를 일정범위 내로 수렴시킨 뒤 아시아중앙은행(ACB)을 설립해 경제여건이 비슷한 국가부터 단일통화를 우선적으로 도입,확대시키는 방안이 검토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단계를 거쳐 국제통화 질서가 3극 통화체제로 정착될 경우 환율결정메커니즘은 미 달러화와 유로화,아시아 단일통화간의 환율 움직임에 상하 변동폭이 설정되는 '목표환율대(target zone)'가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일본의 위상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엔화 가치가 더욱 하락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원화의 디노미네이션 고려 시점=우리나라는동아시아 지역내 공동화폐 도입을 위한 각종 연구과제를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공동화폐 도입에 앞서 가장 중요하게 전제가 돼야 할 우리의 위상(구체적으로는 원화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연구과제는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앞으로 진전될 공동화폐 도입 논의에서 우리가 좋은 위치를 점하고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아시아 주도권 싸움에서 우리 경제의 안정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본격적으로 원화의 국제화 등 위상을 높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방안중에서 이제는 '원화의 디노미네이션(denomination)'을 구체적으로 추진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처럼 달러에 대한 네자릿수의 원화 환율체계로는 개도국의 인상을 지워버릴 수 없고 공동화폐 도입논의에서 좋은 위치를 확보할 수 없다. 현재 세계 11∼12위의 우리 경제규모(GDP 및 무역규모 기준)를 감안할 때 최소한 세자릿수대의 원화 환율체계는 유지돼야 한다.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