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렬인가, 진통인가''. 하이닉스반도체와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간 매각협상을 둘러싸고 복잡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양사가 양해각서(MOU) 체결 잠정시한으로 잡은 1월말이 지났지만 양진영은 감감무소식이다. 협상타결 여부를 판가름할 것으로 기대됐던 하이닉스 구조특위는 31일돌연 연기됐고, 대신 인피니온과의 제휴카드가 급부상하고 있다. 이처럼 외견상 협상이 순조롭지 못한 양상을 띠고 있지만 아직까지 ''결렬''보다는 ''타결''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관측이 많은게 사실. 특히 절박감이 커진 마이크론측이 곧 입장표명을 해올 것으로 전망된다. ◆ `인피니온 카드'' 왜 나왔나 = 하이닉스와 마이크론간 협상의 틈을 비집고 인피니온 제휴카드가 불거지자, 업계전문가 대다수는 하이닉스의 `다목적 포석''으로풀이하고 있다. 그간 고(高)자세로 버텨온 마이크론을 압박하는 동시에, 협상결렬에 실질적으로 대비하자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것. 구조특위측은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다"는 말로 협상진행 사실을 간접확인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인피니온의 `협상용 발언''에 불과하다는 관측도 있다. D램 부문 매각을 놓고 마이크론과 인피니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도시바를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어찌됐건 인피니온과의 제휴카드를 "매우 그럴 듯한 조합"이라고 평가하는 분위기가 높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시너지 효과면에서는 인피니온이 더 낫다"고 말했다. 최근 AIG와 GM 등 미국업체와의 매각협상 전례를 거론하며 `꼭 마이크론이어야만 하느냐''는 업계의 여론도 커지고 있다. ◆ 시너지는 `충분'', 실현여부는 `미지수'' = 전문가들은 현단계에서 하이닉스와인피니온간 제휴가 이상적인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단 인피니온으로서는 ▲시장점유율 확대와 ▲첨단 공정기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 시장점유율(생산능력 기준)이 8∼9%에 불과한 세계 4위의 D램 업체인 인피니온이 하이닉스(17%, 2위)와 손을 잡는다면 삼성전자(24%)를제치는 시장지배력을 갖게된다. 더욱 매력적인 것은 하이닉스의 스택(Stack) 공정방식. 평면위에서 트랜지스터를 쌓아가는 방식으로 256메가 D램 이상, 15인치 미만의고성능 D램을 만들려면 필수적인 기술이다. 대우증권의 한 애널리스트는 "구멍을 파고 그위에 트랜지스터를 쌓아올리는 트렌치(Trench) 방식을 쓰는 인피니온으로서는 매우 탐낼만한 공정기술"이라고 말했다. 제휴파트너로 거론돼온 도시바와 대만업체들은 트렌치 방식을 쓰고 있다. 그간 신규투자를 하지못한 하이닉스로서는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인피니온의 300㎜ 웨이퍼 공정기술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인피니온의 자금사정이 넉넉치 못한 점이다. 작년 불황기를 겪으면서 수익구조가 크게 악화돼 `실탄(현금)''이 부족한데다 대주주인 지멘스의 지분철수 움직임도 우려를 던지는 대목이다. 인피니온의 울리히 슈마허 회장이 제품개발과생산부문에서의 단순협력을 거론한 것도 이런 사정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재무구조 자체를 바꾸는 시도를 하고 있는 하이닉스와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대목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인피니온도 마이크론과 마찬가지로 자사의 주식을 인수대금으로 제공하는 방안도 강구해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메리츠증권 최석포 연구위원은 "양사의 제휴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대안"이라며 "특히 인피니온의 경우 프랑스에서 IBM, 독일과 미국에서 모토로라 등과 수많은짝짓기를 한 경험이 있어 제휴의 시너지 효과가 매우 클 것"이라고 말했다. ◆ 독자생존론 가능한 대안인가 = 마이크론과의 협상결렬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독자생존론이 다시금 부각되고 있다. 다음달 초 고정거래가격이 개당 3.2달러에서 4달러로 인상될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현물시세도 지속적인 오름세를 타면서 하이닉스의 수익구조가 개선되고 있는 점도 힘을 더해주는 대목이다. 하이닉스 이천공장 등 현장분위기도 지속적인 원가절감과 생산성 향상노력을 통해 자체 정상화의 기틀을 상당부분 잡아가고 있다는 후문이다. 채권단은 향후 독자생존으로 방향을 잡을 것에 대비, 1조원에 달하는 신규투자비용을 부담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는 하이닉스를 헐값에 팔지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지, 현실적인 해법으로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구조특위 고위관계자는 "당장 추진한다기 보다는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의 하나로 보면 정확할 것"이라고 말했다. ◆ 협상 곧 결론날 듯 =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마이크론측도 매우 다급해진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론은 전날 주요증권사 애널리스트들에게 1일(현지시각)설명회를 갖겠다고 긴급통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하이닉스와의 제휴문제가 거론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채권단의 이견절충이 계속되고 있는 구조특위도 하루 이틀뒤 다시 전체회의를 소집할 예정이어서 적어도 이번주 이내로 협상타결 여부가 판가름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양사의 입장과 이해관계로 볼때 일정부분의 양보를 통해 협상을 타결시킬 것으로 보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기자 rhd@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