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책임질 일이라면 다른 많은 전통있는 금융회사들을 놔두고 하필 AIG컨소시엄과 같은 곳과 협상을 시작했다는 것일 것" 1년 반을 끌어온 현대투신 매각협상이 무위로 끝난뒤 금감위 고위관계자가 내뱉은 말이다. "AIG만 비난할게 아니라 정부의 실책과 오류도 돌아보라"는 기자의 지적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의 말처럼 유감스럽게도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지는 일, 또는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이 계속되고 있다. 제일은행을 인수했던 뉴브리지캐피털도 그렇고 현대의 증권3사를 매입하겠다며 얼굴을 맞댄 AIG도 결코 ''좋은'' 인수대상자는 아니었다. AIG는 국제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이미 악명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던 터였다. 대부분 협상 당사자들은 그들에게 모든 것을 발가벗기고 결국은 퇴짜맞기 일쑤였다. 지난 99년 국제매각에 성공했다는 제일은행도 상황은 마찬가지. 98년 사상 유례없던 은행 구조조정과 함께 국제매각키로 한 제일은행의 최종 협상파트너는 뉴브리지캐피털 컨소시엄으로 선정됐다. 매각가격을 흥정하던 뉴브리지캐피털은 98년 후반에 들어 어물쩡 ''풋 백 옵션''이란 조항을 들이밀었다. "제일은행의 부실 정도를 충분히 파악키 어려우니 인수후 일정기간내 부도나는 기업에 대한 채권은 한국 정부가 책임져 달라"는 것이었다. 결국 ''풋 백 옵션''이라는 결혼 지참금을 얹고서야 제일은행은 팔려 나갔다. 어줍잖게 막판에 계약조항에 들어간 풋 백 옵션에 따라 제일은행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무려 3조7천7백억원에 이르렀다. 5천억원을 받고 판 은행에 정부가 투입한 돈은 증자대금 등 총 18조원으로 불어났다. 풋 백 옵션의 악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추가로 풋 백 옵션을 행사하겠다고 나선 뉴브리지캐피털과 정부를 대리한 예금보험공사가 맞서면서 결국 영국의 국제상사 중재원에까지 가게 됐고 예보측은 또다시 수천억원의 공적자금을 제일은행에 넣어야 하게 됐다. 1조1천억원을 더 내놓으라고 요구한 이 송사에서 예보가 추가로 부담한 돈은 정확한 규모조차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예기치 않은 공적자금 수천억원이 풋 백 옵션이란 이름하에 또 나가게 된 것은 제일은행 매각계약서에 나타난 워크아웃 기업 여신에 관한 해석차이 때문. 끊임없이 추가자금을 투입해야 하고, 전력투구했다는 1년반의 협상이 물거품되는 이같은 일이 되풀이되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이들 국제자본의 성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금융계에서 보는 원인이다. 뉴브리지캐피털이나 이번의 AIG컨소시엄이나 모두 단기투자수익을 노린 ''포트폴리오 투자자''라는 해석. 한국에 들어와 은행업 또는 증권업을 장기적으로 영위하기 보다는 일정기간이 지난뒤 되팔아 차익을 내려는 투기자본이기 때문에 사전에 ''원금 보장'' ''최저수익률 보장''과 같은 무리한 요구를 끊임없이 제기한다는 것이다. AIG컨소시엄의 경우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는 수준에 따라 투자그룹을 추가로 구성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단기투자수익률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실제로 AIG는 마지막 순간까지 투자조합의 명단조차 공개하지 않아 궁금증을 더하게 했다. 잘못된 만남을 줄이는 가장 실효성있는 방안은 "실수요자에게 팔아야 한다"는 지극히 간단한 원칙을 지키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