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주식시장의 특징 중 하나는 국내기관투자자가 철저히 외국인의 들러리로 전락했었다는 점이다. 9.11 미국 테러사태 이후의 단기 랠리에서 국내 기관은 주도권을 외국인에 넘겨주고 "시장의 역행자"라는 비아냥을 감수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 대한 한국 등 3대 투신운용사 사장이나 주식운용본부장이 모두 교체되는 불명예도 안았다. 2002년 주식시장에서 명예회복을 벼르고 있는 기관의 성패는 무너진 대외 신뢰를 회복하고 주가의 견조한 지지에 바탕한 개인자금 유입에 달려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불안한 장기증권저축 효과=투신 증권 은행 등 국내 기관투자가는 작년 말 폐장일 하루 전부터 대규모 매수 우위를 보이며 연초 기관화 장세에 대한 기대를 부풀렸다. 기관들은 7일 대규모 프로그램 매도물량 출회로 순매도로 전환했지만 올 들어 지난 4일까지 5일간 6천억원어치 이상을 순매수했다. 이는 작년 말 회수했던 연기금 등의 자금이 조정기간을 틈타 일부 재집행됐고 무엇보다 연말 세액공제를 노린 장기증권저축 가입액이 급격히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 11월 말 6조1천8백93억원이었던 투신사와 자산운용사의 순수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지난 연말 6조9천1백77억원으로 한달새 7천2백84억원이나 늘었다. 하지만 현재 기관투자가들의 추가 매수 여력은 동이 난 상태다. 주가가 750선을 넘어선 이후 프로그램 매수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기관투자가가 차익실현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올 들어 장기증권저축으로의 자금 유입이 주춤하면서 주식형 수익증권 잔액이 감소세로 돌아선 것도 불안한 대목이다. ◇신뢰 회복과 개인자금 유입이 관건=SK투신운용 장동헌 주식운용본부장은 "2000년 하락장 때 맛본 간접상품에 대한 쓰라린 기억과 대우채 소동 등을 거치면서 추락한 투신권의 신뢰도 때문에 개인투자자금이 투신권에 들어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주가가 단기간에 급등락하는 패턴을 벗어나 최소 730 이상에서 견조한 지지력을 보여야 개인의 시장 참여가 가시화될 것(KTB자산운용 장인환 사장)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대우사태 이후 추락한 투신권의 신뢰도는 작년에도 하이닉스와 현대건설 KDS 현대석유화학 채권 등의 상각처리로 인해 또 한번 금이 갔다. 일부 대기업의 신용위험이 남아 있는 올해도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대한투신운용 이기웅 주식운용본부장은 "대부분 펀드가 약관성 의무 주식편입 비율을 거의 채웠기 때문에 지수 750 이상에서 기관이 추격 매수에 나서기는 어렵다"며 "은행과 연기금의 자산 배분이 이뤄지고 지수의 안정성을 확인한 개인들의 자금이 유입되기까지는 하락시 분할 매수,상승시 차익실현이라는 단기 패턴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하 기자 haha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