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하락속도가 빨라지면서 경기 조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에 젖어 있는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엔 약세'라는 돌발 변수가 한국정부의 경제정책 운영에도 새 장애물이 되고 있다. 당장 전자 자동차 등 일본 제품과 직접적인 경쟁관계에 있는 수출기업들은 벌써부터 가격경쟁력 하락에 속수무책이라고 아우성이다. 또 엔 약세가 원화 약세를 불러오면서 물가도 자극받고 있고 국내 금융시장에도 새로운 변수가 될 전망이다. ◇ 실물 경제 위협 =한국은행에 따르면 엔.달러 환율이 10% 상승(엔화가치 하락)하면 성장률이 0.16% 떨어지고 경상수지는 13억달러가 줄어든다. 수출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이미 원.엔 재정환율(원/1백엔)은 1천5∼1천10원까지 하락, 지난 9월 하순(1천1백10원 안팎)보다 1백원 가까이 원화 가격이 오른 상태다. 세계 시장에서 우리 상품과 가장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상품이 일본 제품(무역협회 분석)임을 감안하면 한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그만큼 떨어졌다는 말이다. 엔 약세가 물가불안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도 정부가 긴장하는 대목이다. 원화 가치의 동반 하락세가 나타나면서 수입물가 상승이 가시화되면 결국 소비자물가를 자극할게 분명하다. 이에 따라 정부가 내년 경제운영 계획으로 잡은 국내총생산(GDP) 4%이상 성장, 소비자물가 3% 수준, 경상흑자 40억∼50억달러 달성이 벌써부터 난관에 부딪쳤다는 지적이 많다. ◇ 외환.금융시장 불안 =원화는 엔화에 연동해 질서정연한(orderly) 하락세를 보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일 외국인의 한국주식 투자가 계속되면서 원화만 나홀로 강세를 지속하고 이를 실물경제의 호조가 뒷받침하지 못할 경우 일정 시점에 급작스런 환율조정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엔 약세가 과도하게 진행되면 일본에서 동원된 아시아 투자자금, 즉 엔케리(carry) 자금이 일시에 이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원화가 엔화를 따라 약세로 기울어도 외국인 자금이탈 등 문제가 발생한다. 엔화 약세에 맞추어 원화를 무작정 약세로 끌고가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엔 약세를 수수방관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진념 장관이 엊그제 "엔 약세가 환율전쟁을 촉발하고 동북아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이런 고민의 단면이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