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대폭발의 기폭제는 두 첨단기술업체 최고경영자(CEO)의 발언이었다. 존 챔버스 시스코시스템스 CEO는 4일(현지시간) 애널리스트들과의 정례 만남에서 "지난 6월 이후 주문 증가가 꾸준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11월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조심스런 낙관론을 폈다. 소프트웨어 메이커인 오라클 CEO 래리 엘리슨도 같은 날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연례 컨퍼런스에서 "비즈니스가 안정 단계에 들어섰다"며 "내년부터는 성장세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했다. 두 CEO의 발언은 '기술주들이 바닥을 쳤다'는 것으로 해석되면서 증시에 때아닌 봄바람을 불러왔다. 5일 나스닥은 4.27% 오르며 2,000선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기술주들의 상승에 힘입어 다우지수도 2.23% 상승한 10,114.29로 9.11테러 이후 처음으로 10,000선을 회복했다. 올들어 10차례에 걸친 금리 인하로 미국의 최근 은행 이자율은 연 2% 안팎. 이날 다우 투자자는 하루만에 연간 은행 이자, 나스닥 투자자는 2년동안의 이자에 해당하는 금액을 번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날의 상승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지 않는다. 기술주를 중심으로 경기 전체가 상승세를 타는 '추세의 변화'로 받아들이고 있다. 나스닥이 지난 9월21일의 바닥점에서부터 무려 44% 올랐지만 아직 추가 상승 여력이 많다는 전망이다. 지난 3년간 4분기 연속 30% 이상 올랐다는 '기술주 연말 랠리'도 분위기를 돋워주고 있다. 증권사들도 바닥을 확인해 주려고 애쓰고 있다. 메릴린치의 기술주 담당 애널리스트인 스티블 밀러노비치는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델컴퓨터 등 리딩 회사들의 실적을 검토해 볼 때 컴퓨터통신장비 반도체의 주문과 선적이 바닥을 친 것 같다"고 분석했다. UBS워버그의 애널리스트 바이런 워커도 "반도체장비 메이커는 이제 더 나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회복은 가까운 장래에 올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실제 메릴린치는 시스코시스템스에 대해 "데이터 네트워킹 시장이 살아날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시스코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는다"며 이 회사에 대한 평가 등급을 '적극 매수'로 유지했다. CSFB는 발빠르게 시스코의 내년 수익 전망을 1센트 올린 24센트로 상향 조정하고 나섰다. 골드만삭스도 선마이크로시스템스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이같은 긍정적인 보고서와 인텔의 수익 전망이 상향 조정될 것이란 소식 등으로 기술주의 주력 부대인 반도체 주식도 급등, 필라델피아 증시의 반도체 지수가 이날 하루에만 7.7% 상승했다. 전미구매관리자협회(NAPM)의 11월중 비제조업부문 지수가 성장세를 나타내는 51.3을 기록한 것도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는 믿음을 굳혀주고 있다. 물론 낙관만 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많다. 실제 밝은 뉴스는 아직 일부 선두기업들에 국한된 실정이다. 아랫목이 따뜻해진 뒤 윗목까지 데워주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측된다. 경기가 V자보다는 U자형으로 회복될 것으로 말하는 전문가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