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지난 월요일부터 꾸준히 미끄럼틀을 타고 1,270원대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내려섰다. 나흘째 하락폭이 12.60원이나 된다. 환율은 6개월여동안 지켜오던 1,280원이 전날 깨진데 이어 이날도 공급 우위 장세와 국내 증시의 초강세, 외국인의 대규모 주식순매수 등을 배경으로 하락가도를 달렸다. 물량에 대한 부담은 이어졌으며 경기 회복 기대감도 한 몫하고 있다. 외환당국의 개입에 대한 경계감도 '속도조절용' 개입, 이른바 '스무딩 오퍼레이션'(smoothing operation)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국책은행의 매수세도 강하지 않았다. 폭주 기관차같이 주가의 급등, 원화 강세 심리를 단단히 옭아맨 상태여서 다음주 추가 하락에 대한 기대감도 강하다. 1,260원대 진입도 노려볼만 하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당국의 움직임이 어떻게 나올지 주목되고 있다. 2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전날보다 5.00원 내린 1,271.80원에 한 주를 마쳤다. 지난 3월 9일 1,268.80원에 마감된 이후 최저치다. 오전장만 해도 강보합권을 유지했던 환율은 오후 들어 꾸준하게 일중 저점을 내리는 흐름을 보였다. ◆ 1,260원대 진입 시도 = 1,280원이 깨진 지 불과 하루에 지나지 않았지만 하락이 완연한 추세임을 감안하면 시장 참가자들은 1,270원대가 결코 안정적인 레벨이 아님을 인식하고 있다. 추가 하락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셈. 당국이 어느 정도 선에서 '총알'을 들이댈 것인지 쉽게 짐작하기 어려우나 현 상황이 투기적인 매도세가 아닌 공급 우위에 의한 자연스런 흐름임을 인지한다면 '속도조절용'외의 카드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증시 강세 등의 시장 주변 여건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펀더멘털이 상대적으로 양호하다는 점도 이에 가세한다. 외국계은행의 한 딜러는 "반등을 기대했던 업체들도 지속적으로 매도세로 나섰으며 매수세는 취약했다"며 "외국에서 한국이 3분기에 경기저점을 찍었다는 예상도 하고 비전을 좋게 보고 있어 증시와 함께 원화도 강세가 분명한 흐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렇게 되면 1,270원대도 안정적인 레벨로 보기 힘들다"며 "완만하게 하락하는 흐름을 띠면서 당국이 어느 선까지 허용할 지가 관건이지만 1,260∼1,280원 정도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의 딜러는 "당국도 특정레벨을 고집하지 않는 것 같다"며 "넓게는 1,250원까지 흐를 수 있으며 다음주에는 1,260원대에 대한 시도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이어 "주식시장과 외국인의 순매수가 다음주에도 영향력을 과시할 것"이라며 "역외에서도 달러되팔기(롱스탑)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 매수세 실종, 공급 우위의 '힘' = 공급우위의 장세는 이날도 이어졌다. 개장초 그동안 하락에 대한 일부 조정과 달러/엔의 124엔 상향 돌파시도가 초반 상승세를 유도하긴 했으나 시장 환경은 달러매도 심리를 강화시켰다. 업체의 네고물량이 반등 시도 때마다 나왔으며 결제수요는 자취를 감춘 상태. 국책은행의 매수세도 강하지 않았다. 역외세력도 조금씩 헤지물량을 내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시장 참가자들의 하락 기대심리를 강화한 요인은 국내 증시의 초강세와 1,000억원을 넘은 외국인 순매수. 이날 증시는 폭발적인 강세를 보이며 연중 최고치를 기록, 전날보다 20.62포인트, 3.30% 오른 645.18에 마감했다. 국내 증시의 외국인은 장중 거래소와 코스닥시장에서 각각 1,320억원, 232억원의 순매수를 기록했다. 외국인 주식순매수가 1,000억원을 넘어서 달러 공급 요인으로 부각돼 공급우위의 장세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업체들도 외화 예금을 덜어내려는 움직임을 조금씩 보이면서 낙폭이 커질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할 듯. 달러/엔 환율은 오후 5시 현재 124.13엔으로 124엔을 상향 돌파했다. 장중 124엔 돌파에 어려움을 겪던 달러/엔은 런던에서 조금씩 오름세를 강화하고 있다. 엔/원 환율은 1,027.72원을 기록하고 있다. ◆ 환율 움직임 및 기타지표 = 전날 뉴욕에서 역외선물환(NDF)시장이 추수감사절로 휴장했으며 이날 환율은 전날보다 3.20원 오른 1,280원에 출발했다. 개장가가 너무 높게 형성됐다는 인식으로 9시 32분경 1,278.30원까지 오름폭을 줄인 뒤 한동안 1,278원선에서 횡보했다. 이후 환율은 물량 부담이 가중되면서 1,277원선으로 내려섰으며 서서히 저점을 낮추는 흐름을 띠며 11시 58분경 1,276.90원까지 내린 뒤 1,277.10원으로 오전 거래를 마쳤다. 오전 마감가보다 0.20원 내린 1,276.90원에 오후장을 연 환율은 이내 전날 마감가대비 하락세로 돌아서 레벨을 낮추면서 2시 31분경 1,273.40원으로 저점 경신을 거듭했다. 전 저점인 8월 16일의 1,284.50원을 깨고 내려선 것. 이후 환율은 국책은행에서 매수세 유입으로 한동안 1,274원선을 거닐던 환율은 3시 30분을 넘기면서 추가로 물량 공급이 이뤄지면서 저점 경신을 다시 시작, 4시 1분경 1,270.90원까지 흘렀다. 이후 강하게 1,273원으로 반등했으나 1,271∼1,272원 언저리를 거닐었다. 장중 고점은 개장가인 1,280원, 저점은 1,270.90원으로 지난 3월 9일 기록한 장중 저점인 1,263.50원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가리켰다. 변동폭은 9.10원으로 최근에 비해 확대된 움직임이었다. 이날 현물 거래량은 서울외국환중개를 통해 19억8,580만달러, 한국자금중개를 통해 9억5,840만달러를 기록했다. 스왑은 각각 2억7,130달러, 1억9,780달러가 거래됐다. 24일 기준환율은 1,275.60원으로 고시된다. 한경닷컴 이준수기자 jslyd0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