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황판이 보기에도 뜨겁지 않습니까. 기다린 보람이 있긴 있나 봅니다. 앞으로도 이런 추세가 계속돼야할텐데..." 23일 종합주가지수가 주말 악재와 미국 증시의 하락을 딛고 연중 최고치를 기록하자 투자자들은 하나같이 들뜬 표정이었다. IT산업의 침체와 반도체값 하락,세계경제 동반불황 등의 충격으로 비틀거리던 증시가 11월 들어 연일 상승하면서 모처럼만의 "대박"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그동안 주가하락을 예상하고 미리 주식을 처분한 투자자들은 쓴 입맛을 다시는 분위기다. ◇기대에 부푼 투자자들=23일 S증권 서울 명동지점.퇴직금 4천여만원을 주식에 투자하는 이모씨(57)는 "안 팔고 놔뒀던 판단이 결국 옳았다"며 연신 웃었다. 이씨는 작년에 H사 주식을 샀다가 원금의 절반 가량을 까먹고는 맘 편한 날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주가가 오르자 "이런 기세라면 원금 회복은 시간문제"라며 오랜만에 얼굴을 폈다. 회사원 박모씨(37)는 오전 내내 직장에서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며 주식을 팔 시점을 기다리다 오후에 주가가 급등하자 아예 추가로 매수주문을 냈다. 미국 다우지수와 나스닥지수가 내렸는데도 국내 증시가 버티고 있어 앞으로 더 오르리라 판단한 것. 실제로 개인들의 주식매수 대기자금인 고객예탁금은 이달초 8조3천억원대에서 현재 9조5천억원대로 1조원 이상 치솟았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증시에선 '강남 일대에서 수십억원을 주무르는 큰 손이 증시에 들어왔다'는 등의 소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인기 끄는 투자설명회=각종 투자설명회도 연일 성황이다. 이달 들어 투자설명회를 개최한 대우 SK 대신 굿모닝 LG투자증권 지점에는 40∼1백여명의 고객이 몰렸다. 평소에는 10∼20여명이 고작이었다. 이에 앞서 지난 17일 여의도에서 투자정보업체인 주간증권정보사가 주최한 투자설명회에는 1천2백여명의 투자자가 모여 북새통을 이뤘다. '종합주가지수,내년말에 1,200 간다'는 강의 주제가 투자자들의 발길을 당긴 것.준비된 7백개의 좌석이 꽉 차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바닥에 주저앉거나 벽에 기대서야 했다. 이 회사 김용국 총무는 "참가자 수가 다른 때보다 2∼3배 늘어났다"며 "다음 강연회도 문전성시를 이룰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종목 정보를 제공하는 '재야의 고수'나 '사이버 고수'들의 인기도 치솟고 있다. 한경와우TV의 '국민주식고충처리반'에는 하루에도 수백통의 문의 전화가 걸려 온다. 팍스넷의 무극선생 미래칩스 등 쟁쟁한 사이버고수가 설명하는 시황은 편당 2천∼5천원을 내야 하지만 매일 4백∼5백여명의 고정팬이 참여한다. ◇허탈해하는 관망파=하지만 지금까지 주가하락을 예상하고 현금 쪽으로 돌아섰던 '관망파'는 내심 당황해하는 눈치다. 서울 목동의 최모씨(46·여)는 "지난주 주가가 내릴줄 알고 보유하던 D사 주식을 6천원대에 모두 팔았는데 주가가 올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이제와서 다시 사자니 불안하고 그냥 지켜보자니 더 오를까봐 조바심이 난다. 대우증권 반포지점 배준덕 지점장은 "억단위의 거액을 맡기는 사람은 아직까지 별로 없다"며 "무조건적인 낙관이나 실망은 금물"이라고 지적했다. 고객예탁금 증가분 중 개인들의 주식 매도자금을 제외하면 30% 정도만 새로 유입된 돈이라는 얘기다. 종합주가지수가 지금보다 좀 더 올라줘야 큰 손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배 지점장은 설명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