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가 주식시장을 움직이고 있다. 외국인의 매수세가 주춤해지면서 현.선물 가격차이를 이용한 프로그램 매매가 급증했다. 최근 5일 동안 유입된 프로그램 매수는 자그마치 7천억원에 이른다. 특히 이번주 들어서는 매수강도가 더욱 강화되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능동적으로 시장을 이끌고 갈 매수주체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프로그램 매매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따라서 선물시장,특히 외국인의 선물 매수 동향이 주식시장의 향방을 가를 변수가 될 전망이다. ◇프로그램 매매의 힘=21일 종합주가지수가 약보합권에서 마감한 것은 프로그램 매수가 다시 한번 위력을 발휘한 결과다. 전날 큰 폭의 조정을 받은데다 미국 주가 하락으로 '이젠 쉬어갈 때'라는 인식이 투자자들 사이에 확산됐다. 그러나 외국인의 선물 매수로 선물가격이 강세를 보이자 프로그램 매수가 대거 유입돼 장을 떠받치는 역할을 했다. 이날 프로그램 매수는 2천6백67억원,매도는 8백55억원으로 1천8백12억원의 매수 우위를 기록했다. 프로그램 매수는 5일 연속 2천억원 이상 유입됐고 순매수로 보면 사흘 연속 1천억원을 넘어섰다. 이에 따라 매수차익거래 잔고는 4천2백억원 이상으로 불어났다. 이처럼 프로그램 매매가 위력을 발휘한 것은 외국인이 선물 매수포지션을 지속적으로 쌓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9월14일 이후 2만계약 이상의 선물 매수포지션을 보유하면서 시장베이시스를 콘탱고(선물가격이 현물지수보다 고평가)로 전환시켰다. 이에 따라 프로그램 매수세가 지속적으로 유입되며 종합주가지수 상승에 엑셀러레이터 역할을 했다. 전문가들은 시장베이시스의 콘탱고 상태가 유지되고 있어 매수차익거래 잔고가 올해 최고치인 지난 6월의 5천8백85억원 수준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증가하는 비차익 거래=이날 프로그램 매매 중 비차익 거래를 통한 매수 규모는 1천3백45억원으로 지난 15일 이후 5일 연속 1천억원을 넘어섰다. 반면 비차익 매도는 5백91억원에 그쳐 7백53억원의 매수 우위를를 나타냈다. 비차익 거래가 1천억원을 넘어섰다는 것은 그동안 시장 참여를 주저하던 기관이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한정희 대한투신증권 연구원은 "비차익 거래가 주로 인덱스 펀드를 구성하는 데 사용되는 만큼 그동안 팔기에 급급했던 기관의 주식 편입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최근 비차익 매도물량이 감소하고 있는 것은 펀드 해지가 일단락되는 과정에서 낮아진 주식 편입 비중을 늘리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투신권에서 1천억원 넘게 프로그램 매수가 들어온 것을 보면 일부 펀드가 차익 거래에 나서기로 결정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다만 일부 펀드를 해지한 뒤 새로 설정하는 과정에서 유입된 물량이 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고 덧붙였다. ◇선순환 고리 단절 여부에 주목=전문가들은 프로그램 매매가 실질적인 수급 개선이 아니라 무위험 차익을 노린 기계적인 거래이기 때문에 추세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전균 동양증권 과장은 "매수차익거래 잔고는 향후 선물을 사고 주식을 파는 청산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잠재 매물로 볼 수 있다"며 "프로그램 매매는 '양날의 칼'과 같은 성격을 지니는 만큼 향후 외국인의 선물매매 동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미 상당한 수익률을 올린 외국인이 보유 중인 매수포지션을 청산할 경우 선물가격 하락→백워데이션 전환→프로그램 매도 유발→지수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전 과장은 "최근 들어온 프로그램 매수는 시장베이시스 0.2∼0.3 수준에서 설정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당장은 청산될 가능성이 낮아 보이지만 12월물 만기를 전후해 한차례 홍역을 치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