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가 급등하면서 채권 시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채권금리(국고채 3년물 기준)는 16일에도 전날보다 0.06%포인트 오른 연 5.59%를 기록,사흘동안 무려 0.64%포인트의 급등세를 보였다. 이에 따라 일부 국공채형 및 채권형펀드 수익률도 같은 기간 평균 0.6%와 0.3%씩 떨어지면서 듀레이션(가중평균 만기)이 긴 것으로 알려진 일부 투신사에 환매 요청이 몰리기 시작했다. 이날 정오께 선물거래소의 전산 장애로 국채선물 거래가 중단되면서 가뜩이나 흉흉한 투자심리를 냉각시켰다. 정부는 금융정책협의회를 열고 채권 금리의 단기 급등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지만 시장 반응은 무덤덤했다. ◇주식이냐 채권이냐=붉게 물든 주식 시세판이 채권투자 심리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경기에 선행한다는 주가는 8주 연속 양봉을 출현시키며 내년 하반기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짙게 표출했다. 국내 채권시장의 미국 동조화도 투자자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미국의 소매판매 급증,신규 실업수당 신청건수 감소 등의 영향으로 미국 국채가격은 연일 급락하고 있다. 대한투신운용 유승곤 연구원은 "지난 8월 이후 채권 거래가 급감하는 속에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채권 선(先)매도와 손절매를 불러오며 금리 상승폭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한화증권 안동식 차장은 "금리가 바닥을 찍고 상승 기조로 전환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일부 위탁펀드에 환매 요청이 몰리고 있는 것도 매물 증가와 수익률 상승이라는 악순환을 불렀다"고 지적했다. ◇은행의 급매물=채권시장 관계자들은 경기에 대한 인식 변화가 채권 투자심리에 악영향을 줬지만 보다 직접적인 금리 급등의 원인을 마찰적 요인에서 찾고 있다. 제조업체의 회사채 순상환이 늘면서 은행예금 증가율이 정체됐고 여기에 원천세와 부가세 납부기간이 겹치면서 일부 은행이 지급준비금을 못 맞추는 경우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실제 일부 은행은 상품 계정에서 채권 매수를 중단하고 급매물을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가뜩이나 채권 수요가 취약한 상태여서 금리 급등이 야기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삼성투신운용의 박성진 차장은 "최근의 금리 급등은 은행들의 자금 스케줄이 꼬이면서 발생한 마찰적 성격이 짙다"며 "국고채 3년물 기준으로 5.6% 위에서는 대기 매수세가 많기 때문에 무엇보다 심리적 안정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금리 급등의 피해자=최근 금리 급등의 피해자는 지난달 말부터 이달초까지 적극적으로 채권 매수에 나섰던 일부 기관이다. D증권 관계자는 "대형 투신사인 J투신과 또 다른 J투신 J은행이 이번 금리 급등 과정에서 큰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삼성투신 박 차장은 "투신사의 경우 시가 펀드의 듀레이션이 보통 1년을 넘지 않아 당장은 기준가격이 소폭 하락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산운용 방식을 다양화할 수 있기 때문에 큰 부담요인이 아니다"고 말했다. ◇미진한 정부 대책=정부는 금융정책협의회가 끝난 뒤 "통안증권 발행의 탄력적인 조정에 더해 국공채를 대상으로 한 공개시장 조작 등을 통해 채권금리 급등에 적극 대처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채권시장 관계자들은 "최근의 금리 급등이 심리적이며 마찰적인 요인에 주로 기인한 데 비해 정부 대책은 수급 측면을 강조하는 원론적인 수준에 머물렀다"며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상승에는 한계=향후 금리 추세에 대해서는 시장 관계자들의 전망이 조금씩 엇갈린다. 한화증권 안 차장은 "주식시장이 강세를 보이는 한 채권금리의 상승 기조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투신 박 차장은 "최근 금리 상승이 단기 마찰적 요인에서 비롯됐고 아직 경기 사이클도 불투명하기 때문에 상승 추세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경기회복 신호가 보여도 과거 채권금리는 인플레 우려가 생긴 후에야 상승 추세를 보였기 때문에 12월중에는 다시 4%대 진입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민하 기자 haha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