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공시 주가조작 등으로 피해를 입은 주주(투자자)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할 경우 피해 사실은 원고인 주주가 입증해야 하나, 아니면 피고인 회사가 입증해야 하나. 법무부가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 시안'을 발표한 뒤 정부와 재계가 피해 사실의 입증 책임을 놓고 치열하게 맞서고 있다. 물론 정부는 소송을 당한 회사측에 피해를 입힌 사실이 없다는 점을 입증할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고 전경련 등 재계는 소송을 제기한 주주가 피해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입증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라 집단소송 제기 건수가 좌우될 수 있기 때문에 재계는 집단소송제 도입에 반대하면서도 이 부분에 특히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오는 11월2일로 예정된 '집단소송법 제정 공청회'에서도 입증 책임을 둘러싼 공방은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법무부의 집단소송법 시안엔 입증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한 명시적 규정이 없다. ◇ 정부 입장 =재정경제부는 집단소송법의 소송대상 행위가 '증권거래법상 손해배상 책임이 있는 위법행위'로 규정돼 있는 점으로 보아 증권거래법상의 관련 규정을 준용, 피고인 회사측에 입증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현행 증권거래법은 분식회계로 인한 개별 피해는 피고(기업)에게 입증 책임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집단소송에서도 허위공시 분식회계 등으로 인한 원고(주주)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기업이 입증하지 못할 경우엔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게 재경부의 논리다. 물론 원고가 회사의 잘못으로 손해를 입었다는 객관적 사실을 갖고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만큼 소송 제기단계에서는 제소자에게 어느 정도 입증 책임이 있다는 점은 재경부도 인정한다. 하지만 본안에 들어가면 회사측의 입증 책임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 재계 입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는 법무부 시안 6조에 '이 법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경우엔 민사소송법을 준용한다'고 명시돼 있다는 점을 들어 소송을 제기한 측이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전경련 김석중 상무는 "시안 6조에 대해 법률전문가들의 유권해석을 받아본 결과 입증 책임은 원고(주주)에게 있다는 답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시안대로 추진된다 하더라도 피해 사실에 대한 입증 책임은 주주들에게 있다는 것. 김 상무는 또 재경부가 준거로 제시하는 현행 증권거래법에도 분식회계를 제외한 주가조작 허위공시 등 나머지 위법행위와 관련해서는 입증 책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임홍근 성균관대 교수는 "증권 관련 사건에 대해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경우에는 개별소송이든 집단소송이든 당연히 거래의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사실들을 소장에 기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법원이 집단소송의 허가 단계는 물론 피해의 인정과 피해액의 산정단계인 본안 소송에서 인과관계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손희식 기자 hssoh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