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주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바닥에서 탈출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D램 현물가격은 하락세지만 컴퓨터 TV 통신장비 등의 핵심부품인 PCB(인쇄회로기판) 디스플레이(모니터.브라운관) 새도우마스크(브라운관색상표시부품)의 판매량은 급증하는 추세다. 미국 증시에서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가 최근 5일 사이에 20% 이상 급등했고 국내 증시에서는 외국인이 삼성전자를 3일 연속 순매수했다. 증권전문가들은 반도체를 비롯한 IT(정보기술)경기가 "더 이상 나빠지기 힘든 상황까지 왔다"고 입을 모은다. IT경기가 4.4분기에 "진바닥"을 확인하고 내년부터 완만한 회복세로 접어들 것이란 낙관론도 나오고 있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 급등=지난 4일(한국시간 기준)부터 9일까지 나흘 연속 오름세를 탔다. 9일 5% 급등한 426.55를 기록,상승세를 보이기 직전인 지난 3일(354.63) 대비 20.28% 올랐다. 낙폭과대에 따른 기술적 반등이라는 성격도 있지만 그보다는 반도체 업체들의 재고가 급감,반도체 경기가 바닥에 도달했다는 분위기가 확산된 때문으로 풀이된다. SK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반도체 재고율은 지난 6,7월 중 각각 86%와 92% 수준에서 8월에는 82%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9월 들어 70%대로 낮아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우증권 전병서 부장은 "낙폭과대에 따른 반등과 계절적인 성수기 요인 등이 겹치고 있다"면서 "특히 이달 들어 일부 D램 현물가격의 하락세가 둔화되는 추세까지 눈에 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경기부양 자금으로 지출할 7백50억달러 중 상당액이 IT 부문에 투입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크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도 강세=외국인의 매도공세가 그치면서 삼성전자 주가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외국인은 이날 삼성전자 주식을 1백억원어치 이상 순매수했다. 이에 힘입어 삼성전자는 전날보다 3.76% 올라 10일 만에 15만원대를 회복했다. 그러나 필라델피아반도체 지수의 급등세와 비교하면 상승폭이 작은 편이다. 3·4분기 실적발표를 앞두고 실적 악화에 대한 우려가 기관과 외국인의 경계심리를 발동시킨 것으로 보인다. 테러 사건 이후 외국인이 한국시장을 비롯한 아시아시장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지 않고 있는 것도 수급에 영향을 준 것으로 지적된다. 하이닉스반도체의 악재가 삼성전자로 '불똥'을 튀게 했다는 분석도 있다. 하이닉스가 중국에 생산라인과 기술을 이전할 경우 앞으로 삼성전자에도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망=바닥 부근에 왔지만 본격적인 회복세를 보이려면 상당기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IT업계의 공급과잉 문제가 해소돼야 하기 때문이다. 소비심리가 본격적으로 살아나기 위해서도 어느 정도의 시간은 필요하다. LG투자증권 구희진 연구위원은 "그동안 재고조정이 많이 이뤄진데다 연말 수요에 대비한 신규 주문이 늘어나 4·4분기에는 3·4분기보다 반도체 기업의 실적이 좋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CRT(브라운관) 부문의 재고조정이 마무리됐고 LCD(액정표시장치) 가격의 하락 속도가 완만해지고 있다"면서 "9월 반도체 수출액도 지난 7,8월에 비해 2억달러 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조정기간을 거쳐 내년부터 반도체 경기가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