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없었다.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싼 전운이 여전했지만 별다른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해외 증시는 불확실성과 함께 증대한 경기 침체 우려를 안고 내리막을 걸었고 국내 증시도 이에 동참했다. 개인이 주도한 화려한 개별 종목 장세는 외국인의 폭발적인 매도 공세에 압도되며 이틀만에 문을 닫았다. 대장주인 삼성전자가 적자 전환 우려 등 악재 융합에 급락했고 지수관련 대형주는 줄줄이 쓰러졌다. 폭락 이후 증시는 변동성을 확대하기보다는 전쟁의 출발점을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대우차 매각 확정, 고객예탁금 증가 등 재료나 수급 측면에서 호재가 나타나고 있으나 국지적일 뿐 대세 영향력은 크지 않다. 당분간 증시는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 속에서 해외 증시와 연동성이 커질 공산이 크다. 전세계 공조 금리인하, 증시방어책 등 긴급 처방이 기대했던 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바닥확인이나 기조전환에는 좀 더 인내심이 필요해 보인다. ◆ 반도체, 통신 다른 길 가나 = 이날 하락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 관련주에 의해 주도된 뒤 SK텔레콤 등 통신주 강세로 만회됐다. 삼성전자 주가는 전날보다 1만원, 6.10% 급락한 15만4,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연중최저치며 지난해 10월 31일 14만2,500원 이래 최저수준이다. 개장 전 한 증권사에서 3/4분기와 4/4분기 연속 영업적자 우려를 드러내며 투자등급을 하향 조정하면서 불을 지폈고 외국인은 보유 지분을 대거 정리하면서 기름을 부었다. 삼성전자 급락은 뉴욕 증시 재개장 이후 반도체주가 나흘 연속 속락한 데다 전날 마이크론테크놀러지가 다음주 실적 발표를 앞두고 적자가 예상되면서 연중최저치로 거래를 마감한 것이 동인으로 분석됐다. 또 이번 테러 사태 등으로 D램 가격 회복 시기가 내년 이후로 지연된다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윈도XP 출시 등에 따른 계절적 수요로 인한 기술적 반등 조차 기대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매도세를 자극했다. 아울러 일부 펀드의 손절매 가격대 진입 가능성도 추정됐다. SK증권 반도체담당 전우종 부장은 "D램 경기회복 지연, 3/4분기 영업이익 적자 등이 이미 알려진 상황에서 이날 급락은 상관관계가 높은 마이크론테크놀로지 하락과 뮤추얼펀드와 연계한 외국인 비중 축소에 따른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전 부장은 "테러 사태로 연초 이후 유지하던 18만원∼20만원대 박스권이 하향조정돼 단기적으로 15만원∼18만원에서 박스권이 형성될 전망"이라면서도 "섣부른 매매보다는 사태 진행 방향과 외국인 매매추이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SK텔레콤은 보합권에서 개장한 이후 일중 한차례도 하락을 허용하지 않으며 단단한 오름세를 보였다. SK텔레콤을 비롯한 통신주의 최근 움직임은 단연 최대 관심거리다. SK텔레콤은 미국에서 테러가 발생한 다음날 하루만 하락했을뿐 투매 심리와 무관하게 줄곧 상승세를 지켰다. 지난 12일 이후 상승률이 15%가 넘는다. 같은 기간 종합지수 상승률은 0.98%. 시장의 체계적인 위험으로 펀더멘탈이 악화된 것으로 평가되는 가운데 △해외 통신주 강세, △상대적인 낙폭 과대, △IT관련주중 내수관련주로 인식, △정책변수의 불확실성 제거, △확실한 수익모델 등이 부각됐다. 그러나 뚜렷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가격과 수급논리에 따른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8월 말에서 9월 초까지 삼성전자가 박스권 움직임을 보인데 반해 SK텔레콤이 급락했고, 이에 따라 저가 메리트에 관심이 모아졌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상승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자 이런저런 모멘텀을 끌어들이지만 결국 외국인 매수세에 기댄 강세라는 의견도 나왔다. 외국인이 뉴욕 증시 개장 이후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면서 종목 갈아타기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우증권 통신담당 민경세 연구위원은 "SK텔레콤 등 통신주는 낙폭이 과대한 가운데 내수관련 실적주라는 인식에 외국인 매수가 들어오면서 상대적인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민 연구위원은 그러나 "외국 통신업체에 비해 저평가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장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IT경기 회복 시점을 잡기 어려운 시점에서 추세적인 상승세을 보이기 보단 가격메리트가 사라지는 선에서 상승세를 마무리할 것"으로 내다봤다. ◆ 수급, 대회전 = 외국인이 사흘 연속 1,000억원 이상 순매도를 기록하며 하락 압력을 행사했다. 외국인 순매도 규모가 사흘 연속 1,000억원을 넘은 것은 기업 실적 발표가 한창이던 지난 6월 중순 이후 석달만이다. 최대 매매세력인 외국인의 이같은 대규모 매도세에 국내 증시는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한켠에서는 외국인이 뮤추얼펀드의 환매에 대비해 보유물량 축소에 나서고 있다는 우려 섞인 지적도 나온다.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미국 뮤추얼펀드 자금은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4주 연속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이같은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테러 변수에 따른 뉴욕 증시 하락, 경기침체 장기화 우려 등에 따른 전반적인 매도 수준에 편승한 것이라는 진단이 우세하다. 테러 이후 관망세를 보이던 외국인이 뉴욕 증시 개장 이후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면서 환금성이 좋은 국내 증시에서 보유 비중을 축소하고 있을 뿐 추세적인 매매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바이 코리아' 문제를 뒤로해도, 당분간 규모를 달리하는 외국인 매도 공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가격외에는 달리 모멘텀이 없는 가운데 전쟁 위협의 잠복 국면에서 맞이한 세계 증시 하락 기운을 벗어날 수 없을 전망이기 때문이다. 반면 개인은 식지 않는 개별 종목에 애정을 표시하며 사흘 연속 매수우위를 나타냈다. 외국인 매도세에 투자 심리가 다소 위축되기는 했으나 투매하던 모습을 버리고 순매도 기조를 이었다. 고객예탁금이 9조원에 육박하고 있고 거래량이 유동성을 보장하고 있는 가운데 반등시 선두에 설 종목이 금리인하 수혜를 받는 개인선호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측면에서 당분간 저가매수세는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날 기관은 이틀 연속 매수우위를 나타냈다. 기관은 오전 한때 약 400억원 매도우위에서 297억원 순매수로 돌아섰다. 장막판 사자우위로 급변, 순매수로 마감하기 위한 노력이 엿보였다. 기관은 사장단 회의 등을 통해 매도자제와 순매수 결의한 후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이날 나타낸 매매패턴은 전날 협회의 제재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어조에 눌린 모습이 역력하다. 약세장에서 기관이 적극적인 매수로 지수를 방어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투자심리와 시장 안정에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시장논리를 무시한 채 매수만 강조할 경우 매매위축과 그에 따른 시장탄력성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시장이 붕괴된 것도 아니고 자율복원 능력이 있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순매수를 유지하게 하는 것은 시장흐름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한경닷컴 유용석기자 ja-j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