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듯하던 하이닉스반도체의 진로가 또다시 불투명해졌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은 14일 ▲출자전환(3조원) ▲채무상환 연장 ▲신규자금지원(5천억원)을 골자로 하는 지원안을 일괄 의결할 예정이었으나 이중 출자전환.채무상환 연장만 의결하고 신규지원안은 추후 결정키로 했다. '추후 결정'이란 단서가 붙어있지만 현재의 채권단 기류상 신규지원안 성사가능성은 희박해진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채권단의 이번 지원결정은 외견상 '절반의 성공' 쯤으로 비쳐지지만 신규지원이란 '알맹이'가 빠진 미봉책에 불과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 유동성 위기는 당분간 해소 = 채권단의 이번 지원결정으로 하이닉스의 재무구조와 현금흐름이 개선되면서 당장의 유동성 위기는 탈출할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3조원 규모의 출자전환으로 부채비율이 현재의 193%에서 134%로 낮아질 뿐더러 연말까지 8천700억원에 이르는 채무상환 부담도 덜게됐다. 소유구조도 일종의 '은행관리' 형태로 보다 안정적인 체제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하이닉스 주식 수는 현재 총 10억1천100만주. 채권단이 빚 3조원을 주당 3천100원에 출자전환한다면 약 9억6천700만주의 주식을 확보, 전체 주식(19억7천800만주)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8.9%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 채권단에 처분권이 넘어간 정몽헌 회장.현대중공업.상선 등 현대측 구주(舊株) 지분(9.3%에서 5% 미만으로 감소 예정)과 추후 유상증자 실권주 인수분까지 감안하면 50%를 훌쩍 뛰어넘는다. 이에따라현대건설처럼 채권단이 경영전반을 감시하는 체제가 구축될 전망이다. ◆ 문제는 신규투자 = 그러나 반도체기업으로서는 '성장동력'에 해당하는 신규투자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순항을 기대하기 어렵다는게 업계의 지적이다. 출자전환과 채무상환 연장을 통해 당장의 유동성 위기는 벗어날 수 있지만 하이닉스의 적자구조와 신규투자가 핵심인 반도체산업의 특성상 또다시 유동성 위기의 함정에 빠질 것이란 얘기다. 메리츠증권 최석포 연구위원은 "채무상환이 전액 동결된다고 볼 때 2005년까지 매년 8천억원 총 4조원의 신규자금 지원이 이뤄지지 못하면 정상화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국내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신규지원 자금으로 책정한 5천억원으로도 모자라는데 아예 지원계획 조차 무산된다면 회생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하이닉스측은 채권단 지원과 별도로 1조원 유상증자로 신규자금을 추가 조달한다는 입장이지만 경기침체와 미국 테러사태의 여파로 기존 주주와 시장이 어느 정도 호응할지 미지수다. 기술컨설팅사인 모니터 컴퍼니는 최근 현 시점에서 하이닉스의 경쟁력이 마이크론을 앞서 세계 2위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급속도로 진행중인 반도체 기술변화와 생산성 향상에 서둘러 투자하지 못하면 1∼2년 안으로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하이닉스가 유동성 위기에 발목이 잡혀있는 사이 경쟁메이커들은 막대한 투자를 통해 경쟁력 격차를 6개월 이상 벌려 놓았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하이닉스는 특히 수율향상의 핵심인 미세화 공정이 늦어지고 있는데다 차세대 '300㎜ 웨이퍼(12인치)' 투자를 엄두도 내지 못하고있는 점을 업계 관계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곧 주력제품으로 떠오를 256메가 D램으로의 전환도 경쟁업체보다 처지고 있다. ◆ 반도체경기 조기회복도 기대난 = 미국 테러참사 이후 더욱 불안해지고 있는 반도체 경기도 하이닉스 조기정상화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하이닉스는 9월부터 연말까지 64메가 D램 기준으로 반도체가격이 개당 1달러선에 그치지만 내년초부터는1달러50센트로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국테러참사의 메가톤급 파장으로 PC와 휴대폰 등의 소비심리가 급랭하면서 윈도XP 출시,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시즌의 특수가 실종될 것으로 보는 견해도 대두되고 있다. 국내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4.4분기 반도체 경기 조기회복론은 사실상 물건너갔으며 2002년 하반기로 예상했던 본격회복 시점도 2003년 이후로 미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기자 r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