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소송제 도입을 놓고 정부와 재계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정부는 투명경영 등을 위해 내년중 도입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재계는 소송남발 등으로 기업활동이 크게 위축될 수있다며 강력 반대하고 있다.


특히 재계는 일본이 집단소송제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일본에서 집단소송제 도입과 관련해 유보의견을 제시한 일본 법제심의회의 다케시타 모리오(竹下守夫) 회장(스루가다이대 학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


한국경제신문사는 일본이 집단소송제를 도입하지 않은 배경은 무엇인지,한국적 현실에서 집단소송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는지 등을 알아보기 위해 다케시타 교수와 전경련 손병두 부회장의 대담을 마련했다.


두 사람은 3일 오전 롯데호텔에서 대담을 가졌다.



△손병두 부회장=최근 한국 정부는 주가조작 분식회계 허위공시 등 증권관련 분야를 대상으로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하고 이후 단계적으로 적용범위를 확대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집단소송제 도입 논의가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요.


△다케시타 회장=일본에서 본격적인 입법논의가 일어난 것은 73∼74년에 걸쳐 석유 소비자가격이 이상급등한 때였습니다.


그 원인이 일본 석유연맹의 생산조정과 12개 대형 석유판매회사들의 가격협정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일었죠.


이같은 비난여론이 비등하자 집단소송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습니다.


그 뒤 90년부터 법제심의회에서 새로운 민사소송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집단소송제의 입법론이 다시 불거졌습니다.


당시 논의는 기존의 민사소송법에도 인정돼 있던 '선정당사자(選定當事者)' 제도를 보완하는 선에서 마무리됐고요.


지난 99년 개각 이후 내각 산하에 사법제도개혁심의회가 설치되면서 세번째로 집단소송제 도입이 거론됐지만 이미 보완해놓은 선정당사자제를 지켜보고 집단소송제는 유보하는 쪽으로 결론지었습니다.


△손 부회장=집단소송제는 실제 운용에 있어 소송남용으로 인한 경영혼란 등 부작용이 훨씬 더 심각해 득(得)보다 실(失)이 클 것으로 한국의 경제계는 우려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여러 차례 도입 논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입을 유보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케시타 회장=우선 헌법에 보장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위헌의 소지를 안고 있다는 말이죠.


또한 일본의 전통적인 사법개념과도 맞지 않습니다.


전통적으로 민사법은 특정한 개인의 권리구제를 목적으로 삼고 있지만 집단소송제는 권리자의 권리위임 없이 대표자의 의지에 따라 소송이 진행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경제적 측면에선 미국에서도 많은 폐해가 있었다는 점을 일본에서도 고려한 것 같습니다.


진정한 '피해자 구제'보다 변호사의 이익추구 수단으로 이용되고 기업에 대한 압력수단으로 작용할 우려도 있습니다.


△손 부회장=법제심의회의 논의를 거쳐 개정된 선정당사자 제도의 보완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죠.


한국과 일본은 유사한 법률시스템을 갖고 있는데 어떤 점에서 선정당사자 제도가 집단소송제보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다케시타 회장=지난 96년 민사소송법을 개정하면서 보완된 선정당사자 제도는 '추가적 선정'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1백명의 피해집단이 있을 경우 10명의 대표를 선정해 소송을 진행하다 1천명의 피해자가 추가로 확인됐다면 나중에 확인된 사람에 대해서도 1백명과 동일한 자격을 주는 것이죠.


다만 추가적 선정을 위해선 개별적인 권한위임이 필요합니다.


권한위임 절차만 제외하면 집단소송제와 비슷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제도입니다.


△손 부회장=집단소송제는 아직 구체적인 효과가 검증되지도 않았고 실제로 시행중인 미국에서조차 그 부작용이 많은 제도입니다.


증권관련 집단소송에서 평균 보상액은 보상요구액의 3.27%에 그치는 반면 보상액의 30% 이상을 변호사 보수로 지급하고 있으니까요.


이 제도의 폐해가 문제됨에 따라 미국은 지난 95년 증권민사소송개혁법과 98년 증권소송통일기준법에 소송제기 요건을 강화하는 등 집단소송을 제한하고자 했습니다.


△다케시타 회장=일본에서도 마찬가지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지난 75년 당시 야당이었던 공명당에서 국회에 낸 집단소송제 입법안에도 변호사 보수를 제한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었죠.


△손 부회장=한국의 경우 시민단체나 사회운동가들이 기업지배구조나 경영 의사결정에 직접 관여하려들고 이로 인한 기업의 부담이 큰 상황입니다.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이들의 사회운동이나 정치적 압력수단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큽니다.


△다케시타 회장=일본에서도 시민단체나 환경보호단체가 소송을 지원해 사회운동화하는 경우는 있습니다.


그러나 증권분야 등 재산과 관련해 그런 사례는 없었죠.


경제여퓽?악화된 상태여서 단체들이 나서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고 선정당사자 제도가 보완됐지만 그다지 많이 이용되지는 않은 실정입니다.


환경문제나 대기오염 등으로 많은 사람들의 신체에 장해를 입힌 경우 여러 단체가 모여 사회운동으로 발전시키곤 하죠.


법원에 대한 압력이라기보다 여론을 환기시키는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정리=손희식 기자 hssoh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