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내 금융.기업구조조정을 마무리하겠다며 강한 의욕을 보였던 정부의 입장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정부의 고위관계자는 이와관련,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현안들을 단지 시간에 쫓겨 급하게 처리하지는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진행중인 큰 현안들이 주로 협상과 관련된 것인 만큼 시한을 정해놓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며 "외환위기 직후처럼 경제상황이 혼란스럽거나 급박하게 돌아가는 것이 아닌 만큼 시간을 가지고 신중히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같은 입장변화는 하이닉스반도체를 비롯한 급박한 현안처리의 가닥이 잡히는 등 큰 고비는 넘겼다는 분석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실제로 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 현대건설, 쌍용양회 등 상반기중 처리하기로 했던 5대 부실기업 가운데 상당부분의 처리가 마무리국면에 접어든데다 현대투신증권 매각도 어느정도 윤곽을 잡아가고 있어 나머지 현안들의 경우는 속도조절을 하더라도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 일각에서는 헐값매각 등 국부유출론이 공감을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정치권.노동계 등의 반발 등으로 대우차 매각 등 현안의 처리가 늦어질 경우 자칫 정부의 금융.기업구조조정 의지가 퇴색된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며 '속도조절론'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시장에서는 금융.기업구조조정이 실제로 완성되는 시기를 현대투신증권과 대우차 매각이 가시화되는 시점으로 보고 있다. ◆ 현대투신증권 매각 정부의 고위관계자는 "현대그룹의 현대증권 지분매각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사실상 AIG컨소시엄측과 협상이 거의 마무리된 상태"라고 말했다. 이는 현대그룹측과 AIG컨소시엄간에 현대증권 지분매각부분만 타결될 경우 현대투신증권 매각 협상은 사실상 타결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와 AIG간에는 그동안 2차례에 걸친 실사과정 등에서 이미 상당부분 의견접근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대증권 지분 매각과정은 다소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매각가격. 한때 시장에서는 현대상선의 평균매입가격인 주당 1만6천원선에서 매각협상이 마무리됐다는 설이 강하게 돌기도 했으나 여전히 양측이 가격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현대그룹측과 현대상선, 현대상선의 채권단 등 현대 내부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어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시장에서는 현대상선의 현대증권 지분매각 부분이 이해당사자간에 아직 상당한 견해차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의 의지 등을 감안할 때 조만간 타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 대우차 매각 대우자동차를 미국 제너럴모터스(GM)에 팔기 위한 협상은 지난 4일 1차 협상이후 19일 2차 협상을 했으나 뚜렷한 진전을 보지 못해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양측은 협상가격과 인수 대상, 조건을 둘러싸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잠시 냉각기를 갖고 곧 협상을 시작할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7월중 양해각서(MOU)를 맺을 수 있을지 섣불리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GM측은 부평공장을 인수할 경우 1조원 이상으로 가격을 지불할 수 없고 세금감면 등 채권단이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어려운 조건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폴란드 FSO 공장의 인수도 최근 협상에서 새로운 쟁점이 된 것으로 전해졌다. 채권단은 협상에서 GM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시장에서 대우차를 전진기지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 희망을 걸고 있다. 채권단은 특히 대우차 매각 성사시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구조조정을 일단락하고 국가 신인도를 크게 높일 수 있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있으나 헐값 매각 시비에 크게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매각협상이라는 것이 결국 가격을 놓고 흥정을 벌이는 것인 만큼 시한을 못박을 수는 없는 사안"이라며 "정상적으로 협상이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국내 채권단과 노동계, GM측의 경우는 이사회,주주들의 내부 이견조율을 거쳐야하는 만큼 상당한 시한이 걸릴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서울은행 매각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26일 서울은행 매각협상시한을 9월말까지로 연장했다. 당초 이달말까지 협상을 마무리하기로 했으며 제대로 매각협상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우리금융지주회사에 편입시키기로 했었다. 정부는 그러나 서울은행을 우리금융지주회사에 편입시킬 경우 금융지주회사가 우리나라 금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져 성패에 따른 경제부담이 너무 확대될수 있어 매각협상을 연장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와 함께 현재 매각협상이 진행중인 유럽계 펀드의 경우는 지분의 일부만 매입하겠다는 것이어서 매각여부를 놓고 정부가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당초 외국계 금융회사에 매각할 계획이었으나 일부 관심을 보이던 금융회사들이 실제 매각협상에는 다소 소극적"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서울은행의 경우 부실을 털어내는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데다 이익도 내고 있어 조만간 매각협상대상자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기대했다. ◆ 하이닉스 반도체 외자유치 하이닉스반도체는 지난 15일 1조6천억원(미화 12억4천998만달러) 가량의 GDR 발행에 성공함에 따라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 채권단과 하이닉스 반도체는 최대 2억달러를 투자한 미국계 금융기관을 포함해 전세계 90여개 투자기관이 비교적 고른 분포를 보이는 등 '안정적(Stable)'인 투자구조를 가지고 있는데다 채권회수가 최장 3년 연장돼 당분간 유동성 위기에도 문제없다는 희망적인 관측을 하고 있다. 이에 화답하듯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지난 27일 하이닉스반도체의 장기 신용등급을 종전의 'B-'에서 'B'로 상향조정했다. S&P는 하이닉스가 최근 12억5천만달러 규모의 투자유치에 성공, 회사채상환 사정이 유연해짐에 따라 단기유동성 압박이 줄어들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이닉스의 향후 전망이 밝아짐에 따라 채권은행들도 '현대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채권은행들은 6월말 결산시 하이닉스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높인다는 은행이 많지만 끊없는 수익성 압박부담에서는 일단 벗어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최장 3년간 불확실성이 사라진만큼 유연하게 대처해나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 현대건설 자본확충 현대건설 채권단은 출자전환.유상증자 등을 통해 1조8천123억원의 자본확충을 일단 마무리짓는 한편 오는 29일에는 7천500억원의 전환사채 대금납입도 완료된다고밝혔다. 출자전환과 유상증자를 통한 자본확충 규모는 당초 목표액 2조1천500억원에 3천377억원 모자란 수치다. 채권단은 14개 금융기관이 참여하지 않음에 따라 당초 목표액을 채우지 못했다면서 이들 기관을 상대로 설득작업을 펼쳐나가는 한편 오는 7월에 발효될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따라 2조1천500억원을 채운다는 방침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이달말까지 설득작업을 벌이는 한편 안될 경우 오는 7월 발효될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따라 미참여 금융기관을 끌어들여 출자전환.유상증자 목표액을 채워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자본확충 규모로는 6월말 부채비율이 300%를 넘어가지만 올 연말에는 당초 목표인 299%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출자전환과 유상증자에 불참한 금융기관은 모두 14개로 해외 신주인수권부사채(BW) 채권자들과 협약미가입금융기관이 대부분이다. 채권단은 '말'로 해서 안될 경우 법이라는 강제수단을 들이밀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어서 2금융권의 반발은 현대건설 정상화에 지속적인 부담으로 남을 전망이다. ◆ 쌍용 구조조정 사적 화의 형태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는 쌍용양회는 지난 4월 1조7천억원어치의 전환사채를 조흥.산업은행 등이 인수, 간접적인 출자전환 혜택을 받았다. 쌍용은 쌍용양회가 중심이 돼 ㈜쌍용, 쌍용건설 등 계열사의 구조조정을 추진해왔으며 앞으로 쌍용양회의 쌍용정보통신 지분 67%를 매각하는 과제만 남았다. 쌍용양회는 앞서 작년 10월 일본 아시아태평양 시멘트사에 지분 29%를 3억5천만달러를 받고 매각, 구조조정을 가속화했다. 용산구 삼각지 소재 부동산도 최근 캐나다 농산물회사인 타갈다 그룹에 3천200만 달러(416억원)에 매각했으며 용평 리조트지분 50%도 매물로 내놓은 상태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중인 쌍용건설도 26일 채권단이 4천302억원어치의 CB 분담액을 정하고 200억원 가량의 금리 감면 혜택을 부여하기로 해 4천500억원 가량의 증자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쌍용은 대주주인 쌍용양회의 구조조정이 가속화할 경우 무역상사 기능을 유지함으로써 자력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쌍용양회는 이같은 구조조정 결과 2천500억원의 금융비용 절감 효과를 거둬 올해는 흑자기조로 전환할 수 있으며 쌍용정보통신 지분 매각이 성사되면 상당한 흑자를 거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쌍용정보통신 매각은 현재 외국 펀드사와 협상이 진행중이며 쌍용정공(321만주)지분 매각도 곧 성사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연합뉴스) 임상수.양태삼.정윤섭기자tsyang@yonhapnews.net jamin74@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