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등록기업인 I사 재무팀장 K씨(40)는 지난달초 충격적인 전화 한통을 받았다. "작전(주가조작)을 통해 주가를 띄워주겠다"는 의사 타진이었다. 작전 주도세력의 제품을 I사 계열기업 모두가 구입하는 조건이었다. K팀장은 "이름만 대면 모두 아는 코스닥 선도기업의 너무나도 당당한(?) 작전 제안이었기에 더욱 놀랐다"고 털어놨다. 한국 증시의 한탕주의식 투자 마인드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알만한 사람은 다 하는 작전이긴 하지만 기업간의 공개적인 거래 대상으로까지 발전됐다는 점에서 자못 충격적이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증권거래소와 증권업협회의 시장감시실에서는 하루에만 수십건의 주가조작 혐의 종목이 잡힌다. 이중 작전 혐의가 짙어 금융감독원에 전달되는 건수만 한달에 40여건에 달한다. 작전으로 대표되는 증시의 투기적 양상은 개인투자자도 예외가 아니다. "개인중 상당수는 투자 기업이 어떤 상품을 생산하는지도 모른다"는게 증권사 영업담당자들의 전언이다. 전문가 그룹인 투자상담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온라인 투자상담사인 주모(27)씨는 "초단타를 하는데는 거래량 등 기술적인 분석만으로 충분하다"며 "기업 내용에 대해서는 알 필요도,관심도 없다"고 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하루에 같은 종목을 사고 파는 이른바 데이트레이딩은 한국 증시의 대표적인 투자 패턴으로 부상하고 있다. 코스닥 시장의 경우 데이트레이딩 비중이 올들어 50%를 넘어섰다. 기관들의 장기 투자가 많은 증권거래소도 지난해 1·4분기 20%대에 머물던 데이트레이딩 비중이 40%대로 껑충 뛰어올랐다. "국내증시의 주식 회전율(지난해 상장기업 2백34%)이 미국의 3배,일본의 5배로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점이 국내 증시의 초단기 매매 관행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대우증권의 홍성국 투자정보부장은 말했다. 국내 증시에서 이같이 초단기 매매가 판을 치고있는 이유는 뭘까. "한마디로 장기 투자자들이 돈벌기 힘든 환경 때문"(동원증권 온기선 이사)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제 규모는 커지는데 반해 주가는 뒷걸음질 치고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가 그렇다. 지난 92년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3백3조원.지난해 GDP는 4백76억원으로 57%나 늘어났다. 그러나 주가는 딴판이다. 지난 6일 종가는 597.66으로 지난 92년말 종가(678.44)에 비해 오히려 낮다. 그렇다고 단기투자자인 개인들이 재미를 본 것도 아니다. 팍스넷이 최근 1만5천명의 개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51%가 원금의 70% 이상을 날린 것으로 집계됐다. 현대증권의 정태욱 리서치센터 본부장은 "국내 기업들이 외형 키우기에 치중하면서 ROIC(총투하자본수익률)가 자본비용에도 못미치는게 가치투자를 어렵게 만드는 첫째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젠 달라져야 한다. 모두가 손해보는 '머니게임'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 환경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실질금리 '제로(0)'시대에 들어서면서 3백조원에 달하는 부동자금의 증시 유입가능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더욱이 지난해에는 상장기업의 ROE(자기자본 순이익률·10.5%)가 처음으로 시장금리를 웃돌았다. "ROE가 금리를 넘을 경우 장기투자가 바람직하다"(장인환 KTB자산운용 대표)는 지적을 감안하면 가치투자 환경은 상당부문 조성된 셈이다. 결국 장기투자 문화가 조성될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투자자와 기업 모두의 공동책임인 셈이다. 분식 결산 등으로 재무제표상 멀쩡해 보이던 기업이 갑자기 쓰러지는 일이 사라지고 대주주가 회사돈을 개인돈 쓰듯하는 관행이 사라지면 장기투자라는 새로운 투자패턴이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저금리 저물가 저성장 시대를 맞아 그런 희망의 싹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김철수 기자 kcsoo@hankyung.com < 한경.대우증권 공동기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