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증권 B사장은 요즘 고민에 빠졌다.

우수인력들이 자꾸 외국증권사 국내지점으로 빠져 나가기 때문이다.

예전엔 위탁매매를 담당하던 인력이 빠지더니 요즘은 애널리스트나 인수업무 등을 맡은 사원도 외국회사로 자리를 옮긴다.

해당 직원들을 만나 설득해도 소용이 없다.

업계 특성상 외국계 증권사로 옮겨 나름대로 경험을 쌓는 것은 개인으로선 몸값을 높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기획 홍보 직원까지 요즘 엉덩이가 들썩들썩하다.

세계 굴지의 투자은행이 증권업계의 우수인력을 장악해 가고 있는 것이다.

◇ 외국증권사 진출 배경 =메릴린치증권 서울지점은 연내에 현지법인으로 전환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우선 서울을 포함한 전국 대도시를 중심으로 4∼5개 지점을 둘 예정이다.

이미 랩어카운트나 외국수익증권 등에 대한 고객의 수요를 파악하기 위해 시장조사에 들어갔다.

메릴린치를 비롯한 세계 굴지의 투자은행이 노리는 것은 1천조원에 육박하는 개인금융자산이다.

국내 개인금융자산(은행예금 보험계약 투신수탁고 등)의 규모는 99년 말 7백20조원.

작년 말에 8백1조원으로 늘어났다.

앞으로 1∼2년 안에 1천조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정도 시장 규모면 외국증권.투신사로서도 탐낼 만하다.

게다가 국내 증권.투신사가 투자자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외국회사로선 시장진출의 좋은 기회로 여기고 있다.

기업 관련 비즈니스도 외국회사의 공략대상이다.

한국의 대기업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기업 규모가 작지만 아시아에선 두번째다.

해외유가증권 발행 또는 기업인수합병(M&A) 등 국제금융과 관련된 비즈니스를 파고들 만한 매력이 있다는 이야기다.

◇ 이미 외국증권사가 20% =상당수 외국증권사가 벌써 국내에 진출해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순수외국계 또는 합작형태의 증권.투신사는 모두 18개사(20개 외국증권사 국내지점 제외)다.

전체 96개사(증권 45개, 투신운용 31개)중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크레디리요네증권 서울지점은 올 하반기 중에 현지법인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이를 포함해 앞으로 5개 외국증권사 서울지점이 현지법인으로 전환하고 3개 외국투신사가 진출하면 국내에 합작 또는 순수외국계 증권.투신사는 26개사로 늘어난다.

◇ 일본의 예 =메릴린치증권 등이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영업활동에 나서면 앞으로 허용될 장외파생상품 거래 같은 것은 외국증권사가 독점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예를 보면 국내 시장잠식은 우려되는 상황이다.

3∼4년 전 야마이치증권이 망하고 닛코증권도 기업관련 비즈니스인 인베스트먼트뱅킹업무를 시티그룹으로 넘겼다.

그 후 지난해 시티그룹은 일본 최대증권사인 노무라증권을 제치고 인수실적 1위에 올랐다.

이대로 가다간 한국시장에서도 자산관리업무(랩어카운트 투자신탁)와 기업 관련 국제금융(인베스트먼트 뱅킹) 업무 시장을 내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국내증권사가 국제경쟁력을 갖추려면 외국증권사와 전략적으로 제휴해야 한다.

특히 기업 관련 비즈니스는 자본력 리스크관리능력 상품개발능력 등을 갖춰야 한다.

강창희 굿모닝투신운용 고문은 "국내 대형증권사도 분사해서 소매영업부문은 독자적으로 경영하고 국제금융 부문은 세계적인 증권사와 업무제휴를 하되 경우에 따라 주도권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뿐 아니라 정부도 대책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이를 의식, "제도개선과 인허가권을 통해 투자은행업무를 할 수 있는 리딩컴퍼니가 나오도록 유도하겠다"고 운을 뗐다.

증권사와 당국이 하루빨리 신발끈을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다.

최명수 기자 m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