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렬 삼성증권 사장에게 2000년은 의미가 크다.

삼성증권이 업계 정상에 우뚝 솟은 해이기 때문이다.

주식약정 기준으로 업계 4위에서 1위로 3단계나 뛰어 올랐다.

삼성투자신탁증권과의 합병도 무리없이 마무리했다.

2000회계연도(2000년4월~2001년3월)에는 모든 부실을 털고도 1천9백61억원 가량의 순이익을 남겼다.

증권사로선 가장 많은 이익규모다.

유 사장은 "업계 1위 달성은 상징적인 모멘텀일 뿐"이라고 말한다.

정상에 오르기보다는 정상을 지키기가 힘들다는 말을 의식한 대목이다.

"앞으로 철저한 리스크관리로 꾸준하고 안정적인 이익을 추구할 것"이라는 그의 말에서 내실경영을 다지겠다는 업계 정상 최고경영자(CEO)로서 그의 진솔한 면모를 엿보게 한다.

삼성이 업계 28위인 국제증권을 인수한 것이 지난 92년.

7년만에 업계정상에 선 것이다.

유 사장은 그 가운데 업계 정상을 향한 마지막 3계단(4위->1위)을 걸어 왔다.

그것도 1년여만에 이뤄낸 것이다.

그가 지난해 2월 삼성증권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취임할 당시 증권업계는 시장점유율 1위를 놓고 5대 증권사가 엎치락 뒤치락하는 상황이었다.

유 사장은 취임후 전국 지점을 돌며 직원들을 격려했다.

특히 고객에게 신용 친절 실력 검소라는 삼성증권인의 이미지를 심어주라고 강조했다.

"정도영업을 강조하면서 영업조직의 신뢰를 바탕으로 리딩컴퍼니로서의 이미지를 강화한 것이 효과를 본 것 같다"며 그는 지난 1년간의 "전투"를 술회했다.

그가 일궈 놓은 분야는 위탁매매뿐 아니다.

리스크관리분야에서도 탁월했다.

특히 지난해 삼성투자신탁증권을 합병할 때 그의 과감한 의사결정은 돋보였다.

삼성투신증권은 수탁고 규모가 10조원에 달한다.

그러나 3천억원의 부실을 짊어지고 있었다.

합병을 하면 삼성증권이 부실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유 사장은 팔을 걷어 붙이고 기관투자가를 설득했다.

"3천억원의 부실을 떠안는 대신 10조원의 수탁고로 매년 1천억원이상 수입이 들어온다"며 논리적으로 설득했다.

그 결과 합병주총에서 무난히 합병승인안이 통과됐다.

게다가 합병에 반대한 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회사가 사들인 자사주가 그동안 주가가 올라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합병성사는 그룹내 기획 관리 재무통인 유 사장이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것"이라는 것이 주위의 평가다.

유 사장은 정보화 마인드까지 갖췄다.

자신도 개인홈페이지(yoosukryul.pe.kr)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개인홈페이지에 하루에 몇명이 찾아오느냐"는 질문에 그는 "콘텐츠를 자주 바꾸지 않아 찾아오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며 겸양의 말을 건넸다.

하루에 한번이상 CNN이나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국언론사이트를 검색하는 것도 그의 일과다.

이같은 정보마인드로 그는 지난해 금융포털사이트 "SamsungFn.com"을 만들었다.

"CNNfn"을 원용, 유 사장이 직접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그는 프로야구 공식스폰서로 이 사이트를 널리 알려 최고의 금융포털사이트로 성장시켰다.

유 사장의 경영철학은 "건전한 이익(Sound profit) "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는 "금융업에서 건전한 이익이란 리스크가 관리되는 상태에서 정도경영으로 벽돌을 쌓듯 축적해 나가는 이익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주먹구구식 이익이나 일확천금식 이익은 아무리 큰 이익이라도 중장기적으로 기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유 사장은 회사뿐 아니라 고객에게도 건전한 이익을 가져다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2월 때마침 증권사에 랩어카운트(종합자산관리계좌)가 허용되자 그는 "Fn Honors Club"을 만들었다.

고객의 신뢰를 얻어내기 위해 삼성이라는 브랜드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차인태 금난새 등 중년층에 신뢰감 있는 인물을 내세워 상품광고를 했다.

고객이 맡긴 돈을 잘 굴려 꾸준히 "건전한 이익"을 내 줌으로써 신뢰를 받겠다는 전략이다.

지난 74년 삼성에 입사한 유 사장은 제일모직~삼성전자~삼성캐피탈~삼성증권 4개사를 거쳤다.

그는 지난 83년부터 87년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현지법인에 근무할 때를 떠올렸다.

"당시로선 국내기업중 최대 현지법인인 새너제이지점에서 해외사업의 기틀을 마련한 점이 큰 보람이었다"며 가슴 뿌듯해 했다.

CEO로서 첫발을 내디딘 삼성캐피탈에서도 국내 최초로 공모방식의 ABS(자산유동화증권)을 발행하고 선진 심사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탄탄한 여신전문회사로서 영업기반을 마련해 놓았다.

그는 "외국증권사가 몰려와도 국내 시장을 잠식당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고객에게 신뢰감을 심어주고 투자대안을 제시하면 외국사와의 경쟁에서 충분히 비교우위를 가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유 사장이 삼성증권을 메릴린치 등 세계 굴지의 증권사와 어깨를 견줄 수 있을 정도로 성장시킬지 주목된다.

최명수 기자 m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