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제의 상징''으로 군림하던 스타기업 루슨트테크놀러지스가 파산설에 휩싸였다.

4일 뉴욕증시에서는 루슨트가 파산을 신청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주가가 장중 한때 30%나 폭락했다.

"파산신청설은 전혀 사실 무근"이라는 즉각적인 회사측의 해명으로 주가는 약간 반등해 전날보다 14% 하락한 6.75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루슨트의 지난 1년간 주가 최고치는 지난해 7월17일의 62.98달러.불과 9개월 만에 90%의 대폭락을 기록한 셈이다.

지난달 27일에는 S&P가 "루슨트 회사채의 투자등급을 정크본드(원리금을 갚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채권) 수준으로 강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해만해도 모두가 부러워하던 월가의 황제주 루슨트가 1년여 만에 파산위기까지 몰린 배경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매출과욕''이 부른 참담한 결과였다.

루슨트의 실패 스토리는 주가가 연중 최고치를 기록하던 지난해 여름부터 이미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당시 최고경영자(CEO)였던 리처드 맥긴 사장은 매출목표를 무리하게 높여놓고는 "무슨짓을 해서라도 달성하라"고 직원들을 닦달해 대고 있었다.

맥긴은 ''채찍'' 경영으로 매년 두 자리 숫자의 매출증가율을 기록,루슨트를 월가의 스타로 만든 인물.

그러나 경기가 둔화기로 접어들었는 데도 맥긴은 직원들의 호소를 무시한 채 채찍만 휘둘러댔다.

지난해 8월14일.

북미 담당 최고책임자인 니나 아버사노는 맥긴을 찾아갔다.

대형고객들이 주문을 잇달아 취소하고 있어 3·4분기 매출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란 보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 말을 들은 맥긴 사장은 불같이 화를 내며 고함을 질렀다.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는 날엔 회사를 망치는 주범이 되는 줄이나 알아"

이 때부터 목표달성을 위한 세일즈맨들의 광적인 질주가 시작됐다.

대폭적인 가격인하와 외상 등 각종 인센티브가 총동원됐다.

고객에게 팔린 게 아니라 소매점에 출하한 물건도 매출이 일어난 것으로 장부에 기록됐다.

구두계약도 매출로 잡혔다.

3·4분기 마지막 날인 9월30일.

판매부서는 60억달러 매출목표에서 1억달러 모자란 수치를 달성했다.

''미래의 매출''을 18억달러나 가불한 결과였다.

2개월여만인 10월9일.

아버사노는 다시 맥긴을 찾았다.

4·4분기 매출이 목표를 20% 정도 미달할 것같다고 털어놓았다.

10월16일.

아버사노는 강요에 못이겨 사표를 제출했다.

루슨트의 매출이 목표를 채우지 못할 것이란 소식이 전해지면서 루슨트 주가는 폭락하기 시작했다.

불과 6일후인 22일.

맥긴 역시 해고당했다.

해고 직후 이사회는 매출의 변칙기록을 발견했다.

위장매출을 수정한 결과 9월 매출중 7억달러가 날아가 버렸다.

익명을 요구한 루슨트 간부는 "경영진은 매년 20%의 매출성장 목표를 일방적으로 세운뒤 각 사업부문에 하달했다"고 털어놓았다.

노혜령 기자 hroh@hankyung.com

---------------------------------------------------------------

[ 루슨트 추락 일지 ]

1996년 4월 4일.루슨트,AT&T에서 분사.30.6달러에 첫 거래.

2000년 7월17일.주가 62.9달러 최고치 기록

8월14일. 일부 직원들,3·4분기 매출목표 달성 불가 경고.

9월30일.3·4분기 매출목표,1억달러 미달.

10월 9일.아버사노 북미최고책임자,4·4분기 목표 20% 미달 경고.

10월16일.아버사노 사임

10월22일.리처드 맥긴 최고경영자 해고.후임에 헨리 사치 전 회장 복귀.

10월23일.변칙회계 조사 시작

12월21일.회계수정으로 매출 6억7천9백만달러 감소.

2001년 3월27일.S&P,루슨트 신용등급 정크본드 수준으로 하향경고.

3월29일.통신칩 사업부문 아게레 분사.시장공개.

공모가 당초 계획 20달러에서 6달러로 하향조정.

4월2일.32억달러 긴급대출.

4월4일.파산루머 확산.장중 한때 30% 폭락.

---------------------------------------------------------------

[ 루슨트 어떤 회사인가 ]

1996년 미국 최대의 통신사인 AT&T에서 분사해 독립한 세계 최대의 통신장비업체.

인터넷 붐과 함께 분사 5년 만에 매출이 두배로 뛰는 등 월가의 스타기업으로 각광받았다.

지난해 매출 4백14억달러를 기록,포천 선정 세계 28위 기업으로 랭크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