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공황심리가 걷잡을 수 없게 번지면서 환율이 30개월중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외환당국은 전날 강력한 실명개입에 이어 이날 오전과 오후에 걸쳐 금융정책협의회와 구두개입을 통해 환율안정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지만 환율 급등세에 제동을 걸지 못했다.

역외매수, 은행권의 되사기, 결제수요 등이 외환당국의 개입을 무시한 채 쇄도했다.

환율은 달러/엔에는 동조하지 않은 채 역내 수급에만 좌우됐다. 달러/엔 환율은 126엔을 축으로 그다지 움직이지 않았다.

환율 1,400원대가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달러/엔 환율이 어떻게 움직일지가 여전히 변수지만 1,400원대에 올라서는 것도 힘들진 않다"며 "모레도 1,350원이 지지되면서 1,380원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외국계은행의 다른 딜러는 "1,360원이 뚫린 만큼 1,400원까지 거의 매물이 없어 단기에 1,410∼1,420원까지도 갈 수 있다"고 전했다.

◆ 30개월중 최고치 기록 = 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전날 마감가 1,343.70원보다 무려 21.50원이 오른 1,365.20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98년 10월 7일 1,380원에 마감된 이후 30개월중 가장 높은 수준.

달러화는 전날 하루 조정을 거쳤을 뿐, 지난 목요일 이후 폭등세를 탔다. 목요일 개장가 1,304원과 비교, 무려 60원 넘게 솟구친 것.

장중 고점은 1,365.30원으로 올해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98년 10월 8일 1,370원 이후 최고치다. 저점은 1,344.10원, 변동폭은 21.20원이었다.

외국계은행의 한 딜러는 "내일 휴일 등을 예상하면 달러사자가 그렇게 많을 분위기가 아니었지만 예상외 실수요 물량이 환율폭등세를 유도했다"며 "당국개입에 대한 불신감이 팽배해있어 최고치 경신 행진이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 계란으로 바위를 쳤다 = 환율급등이 거시경제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 적극적인 대응에 나설 것을 보였던 외환당국은 이날 결과적으로 악수를 뒀다.

당국은 전날 환율급등을 막겠다며 실명으로 나선데 이어 이날에는 오전 금융정책협의회에 이어 오후 구두개입에 나서는 등 부산하게 움직였다.

금융정책협의회에서 정부는 당초 예상됐던 외환시장 안정책을 내놓지 않은 채 "당국은 현 수급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필요시 적절한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며 원론을 되풀이했다. 오전에는 메이저정유사 등에 전화를 걸어 달러매도에 나설 것을 권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달러화가 오후에도 1,357원대로 급등하자 "환율불안이 경제전반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감안하여, 외환당국은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다각적인 대책을 추진중에 있다"고 나섰다.

하지만 시장의 달러매수 열기는 누그러들지 않았다.

◆ 뜨거운 달러매수 열기 = 당국은 달러/엔 박스권 움직임 등에 기대 국책은행과 함께 환율을 아래쪽으로 밀고자 했지만 실수요 물량이 이를 저지했다.

장초반만 해도 시장에 포지션이 부족한 감이 있었으나 나오는 물량은 바로 흡수됐다.

역외세력은 오전중 물량을 공급하는 듯 하다가 오후에는 강한 헤지성 매수세로 돌아섰고 업체 결제수요도 많았다. 배당금 수요도 가세했다.

외국인의 증시 순매도분 수요도 나온데다 이날 증시에서는 연중 최대규모의 외국인 주식순매도가 이어졌다.

시장물량을 잘못 계산한 일부 은행권의 달러되사기 물량도 환율 급등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 달러/엔 동향 및 수급상황 = 달러/엔 환율은 전날 뉴욕장에서 달러약세로 125.48엔에 마감한 뒤 도쿄 외환시장에서 126엔대를 축으로 등락을 거듭, 상승추세가 여전히 견고함을 증명했다.

장초반 125엔대를 유지하던 달러/엔 환율은 일본정부의 긴급경제대책 연기, 미국과 중국의 갈등 증폭으로 126엔대로 다시 튀었다. 시장거래자들은 두달 내 130엔까지 상승도 어렵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블룸버그 통신은 이날 9개 은행 및 금융사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달러/엔 전망치를 조사한 결과, 7개월간 지속되고 있는 달러/엔 환율상승세가 이달말경 멈추고 126.28엔대에서 박스권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조사됐다고 보도했다.

일본 증시는 나스닥 폭락을 반영, 약세로 출발했다가 연기된 긴급경제대책에 대한 기대감을 받으며 반전, 전날보다 0.90% 상승한 1만3,242.78엔으로 마감했다.

◆ 환율 움직임 및 기타 지표 = 이날 환율은 역외선물환(NDF)시장 환율이 1,350원을 회복한 것을 반영, 전날보다 3.30원 높은 1,347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직후 오름세로 1,350.50원까지 상승했다가 1,350원에 대한 경계감과 금융정책협의회 결과발표를 기다리면서 차익실현매물이 나와 밀렸다.

달러화는 1,344.10원까지 내려선 다음 저가인식 매수를 받으며 1,345원을 지나 1,348.70원에 오전거래를 마쳤다.

오후 들어 같은 수준에서 시작한 환율은 오전중 금융정책협의회 결과에 실망한 반발매수세와 달러/엔 상승 등을 타고 1,350원을 가볍게 지나쳤다. 또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이 1,700억원이 넘는 순매도를 기록하고 동남아 통화들이 극도의 불안감을 보이면서 전고점 1,355원마저 넘어섰다.

이후에도 인도네시아에서 모라토리엄 얘기가 흘러나오고 역외의 적극적인 달러매수와 달러매도초과(숏) 포지션인 일부 은행의 달러되사기가 가세, 달러매수열기는 극에 달하며 1,360원마저도 뚫고 올라섰다.

외국인은 거래소에서 올들어 최대규모인 1,744억원을 순매도함과 동시에 코스닥에서도 사흘만에 순매도로 돌아서 9억원의 매도우위를 보였다. 이에 따라 주가가 7일 내리 하락마감하며 심리적 지지선이었던 500선 아래로 내려갔다. 오전에 발표된 정부의 증시안정화 대책도 시장심리를 돌려놓기엔 역부족임을 드러내며 전날보다 9.57포인트, 1.90% 내린 493.69로 마감했다. 28개월중 가장 낮은 수준이며 코스닥지수는 1.90포인트, 2.87% 내려 64.34에 멎었다.

이날 외환시장에서 현물 거래량은 서울외국환중개를 통해 22억6,400만달러, 한국자금중개를 통해 12억4,110만달러를 기록했으며 스왑은 각각 10억6,140만달러, 6억8,850만달러가 거래됐다. 기준환율은 1,351.50원으로 결정됐다.

한경닷컴 이준수기자 jslyd0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