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은 작년말 사우디 아라비아 전력청으로부터 5천4백만달러 상당의 변전소 공사를 낙찰받았지만 본 계약을 체결하기까지는 3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해외 금융기관은 물론이고 국내 은행들조차 보증을 서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가 금융기관의 지급보증서를 제출하지 못하자 발주처는 낙찰취소 가능성을 흘리며 현지 관계자들을 애태우게 만들었다.

다급한 현대는 정부에 ''SOS''를 쳤다.

수익성이 높은 공사니 정부가 나서 도와달라는 취지였다.

결국 이 문제는 김윤기 당시 건설교통부 장관이 나서 경제장관 간담회를 여는 등 부산을 떤 끝에 수출입은행이 보증을 서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요즘 해외 프로젝트 입찰에서 이런 케이스는 비일비재하다.

기술과 시공능력이 있어도 보증서 한장이 없어 낙찰을 받지 못하거나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 ''건설-코리아 신화'' 붕괴중 =중동산유국등의 해외 발주처들은 ''한국 업체들이 공사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지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다.

해외공사가 가능한 시공능력 1백위내 한국 건설업체중 39개가 부도 또는 법정관리 상태인데다 현대 동아 대우 등 대형 업체들이 줄줄이 무너진 마당에 어떤 기업을 신뢰하겠느냐는 것이다.

지난 1970년대 고 정주영 현대명예회장이 당시 20세기 최대의 역사로 불리는 주베일 항만공사를 따내 ''건설-코리아''의 성가를 드높였던 시절과 비교하면 참담하다고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자조한다.

사우디 아라비아에 주재하는 김희국 건설교통관은 "요즘 한국 건설업체들은 중동지역 금융기관들로부터 공사착수에 필요한 초기 자금차입부터 거의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모건설회사 해외사업본부장은 "해외 발주처들은 한국업체들이 입찰에 참여할 경우 다른 나라 업체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꼼꼼하게 재무상태와 은행신용도 등을 따진다"며 "현대건설 동아 대우등 ''빅3'' 붕괴로 한국업체를 전반적으로 불신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업체들은 실사단계를 통과하더라도 최종낙찰단계에서 탈락하는 사례도 있어 낙찰 통지서를 받기 전까진 ''노심초사''하는 형편"이라며 "발주처에서 국책은행의 추천서나 보증서 외에 국제상업은행의 복보증까지 요구하고 있어 더욱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털어놨다.

◇ 자금과 신용부족으로 입찰초청을 못받을 정도 =최근 중동 동남아 등의 발주방식은 도급공사보다 시공자가 자체 신용으로 금융을 조달해 공사를 하는 ''금융요구공사''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도 부실기업으로 낙인 찍힌 건설업체들이 해외에서 돈을 마련할 방법은 없다.

업계 관계자는 "입찰초청도 못받는 사례가 늘고 있어 좋은 공사를 두 눈 뻔히 뜨고 경쟁업체들에 내줄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건설금융 부문에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업계 전체가 공멸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플랜트 수주도 동반추락 =건설수주는 중공업과 종합상사의 플랜트등 장기계약수출과 맞물려 있어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세계 플랜트 시장은 중동의 원유및 가스 개발붐과 맞물려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플랜트 건설을 주도하는 EPC방식(설계 구매 시공을 종합 수행하는 일괄발주 방식)의 발주는 작년에 6백20억달러, 올해는 7백억달러 수준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작년 이 분야 국내업체의 수주액은 전체의 3% 수준인 20억달러에 불과했다.

국내 업계는 그동안 ''중급'' 수준인 기술력을 시공력으로 보완해 왔으나 최근들어선 신인도하락과 자금난으로 일본등 선두그룹과는 경쟁상대가 안될 정도로 전락하고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경우 차관제공과 함께 공사를 따내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한국은 나라빚을 갚는데 허덕이는 상황이어서 해외수주경쟁력은 갈수록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업계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조일훈.장경영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