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거래법 개정안의 ''주식 소각에 관한 경과조치''로 기업들은 마음만 먹으면 매입해 보유 중인 주식을 소각할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도 이론적으로는 자사주 소각이 가능했다.

하지만 복잡한 규정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했었다.

지난해 말 주가 폭락 때 자사주 소각이 주가 부양 대책의 하나로 떠올랐지만 실제로 주식을 소각한 기업은 서울증권 등 3개 회사 정도에 불과했다.

특히 지난해 12월에 금융감독원 공시심사실이 발표한 자사주 관련 ''공시심사업무 처리지침''은 충격적이었다.

금감원의 이 지침은 ''이미 매입한 자사주는 소각할 수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굳이 소각하려면 기존 자사주를 처분해 자금을 만들어 다시 복잡한 상법절차를 밟아 소각 용도로 명시된 자사주를 매입하는 수밖에 없다.

팔고 다시 산다는 것이 증시에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른바 시장 충격으로 주가 폭락을 자초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금감원은 현실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상법과 증권거래법의 원칙상 어쩔수 없다는 설명만 반복했다.

때문에 코스닥의 쎄라텍 같은 기업은 자사주 소각을 위해 공개 주식 매집이라는 고육지책까지 동원했다.

대부분 기업들은 이미 취득해 보유 중인 자사주 처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자연스럽게 증권가에서는 자사주 소각에 대한 얘기도 줄어들었다.

주가 하락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은 금감원과 재경부 등에 ''대책''을 호소했다.

마침내 증권거래법 개정안에 거래소 상장 및 코스닥 등록 기업들의 건의를 십분 반영한 조치가 담겨졌다.

지난 21일 재정경제위 소위를 통과한 증권거래법 개정안의 부칙 15조(주식의 소각에 관한 경과조치)는 자사주 소각을 전면적으로 허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증권거래법 개정안에 따르면 과거에 자사주를 매입해 현재 보유 중인 기업들은 원칙적으로 이사회 결의만으로 소각을 할 수 있다.

물론 소각에 대한 근거조항이 회사 정관에 있어야 하지만 대부분 기업들이 이번 주총에서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정관을 손질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는 ''이사회의 결심''이 사실상 자사주 소각의 유일한 변수가 된 셈이다.

단서조항에 따라 4월1일(개정법 시행일)을 기준으로 매입한 지 6개월이 지난 자사주만 소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백만주의 자사주를 지난해 4월 중에 매입한 기업이라면 올 4월1일 이후 언제라도 이사회 결의만으로 소각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중에 취득했다면 올 6월 이후에 소각하면 된다.

여기에는 자사주펀드(자사주신탁계약) 주식도 해당된다.

증권거래법 개정에 이같은 경과조치가 포함됨으로써 금융감독위원회 증권거래소 증권업협회 등은 자사주 소각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후속 조치를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양홍모 기자 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