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A환전소.

기자가 "10만달러를 매입하고 싶다"고 하자 사장 김모(47)씨는 "50만원을 선수금으로 주면 한 시간내로 구해 주겠다"며 반색했다.

그는 "은행에서 살 때보다 달러당 15원씩 싸게 해 주겠다"며 "여권이나 신분증도 필요없기 때문에 한국은행이나 국세청에 통보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영업중인 전국의 환전소는 1천1백30여개.

1999년 4월 환전상에 대한 인가요건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되면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 가운데는 IMF 이후 대거 실직한 전직 금융기관 종사자들이 많지만 일부는 암달러상들이 ''변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암달러상 출신 환전상을 중심으로 당국의 감독이 소홀해진 틈을 타 버젓이 불법행위를 하고 있다.

현행 외환관리법은 환전업체가 달러를 파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상당수 업체들이 달러를 일반인들에게 팔고 있는 실정이다.

김 사장은 "달러 매입만으로는 수지를 맞출 수 없다"며 "상당수 환전상들이 달러 매입과 매도를 동시에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객에게 달러를 사들여 은행에 되팔 경우 달러당 7원 정도만 이익으로 남지만 달러를 사고 팔 경우 달러당 수익은 15원 이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중구 광희동 B환전소의 경우 거래은행으로부터 달러를 매입해 고객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환전소 직원은 "은행보다 달러당 17원씩 싸게 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직원은 "암달러상과 거래하는 일부 환전소와는 달리 은행에서 매입한 달러를 주기 때문에 위조화폐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고 덧붙였다.

환전상들은 이같은 불법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고객이나 암달러상으로부터 달러를 사고 판 내역도 장부에서 누락시키고 있다.

그만큼 영업규모를 작게 신고해 탈세하고 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적발해 내기가 쉽지 않지만 상당수 환전업체들이 신고액을 조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해 일부 환전업체를 지도방문하는 과정에서 장부누락 등 각종 불법사실을 적발하고 경고 및 영업정지 처분을 내린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일부 환전업체들은 외화 밀반출에도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을지로의 C환전상 장모(33) 사장은 "1% 정도 수수료만 내면 한국은행이나 국세청에 통보되지 않고 달러를 해외로 보내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소액인 경우 다른 사람의 이름을 이용해 1만달러 이하로 나눠서 송금하고 금액이 클 경우 국내에 들어와 있는 비거주자에게 원화를 준 뒤 해외에서 만나 그만큼의 달러로 바꿔치는 일명 ''환치기''를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관계자는 "지난해 불법 외환 유출입 규모가 25조∼50조원에 달했던 것으로 추산된다"며 "2단계 외환자유화 시행으로 외화 밀반출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환전상과 암달러상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