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만원짜리 자동차 한대가 있다.

몰고 다니려고 구입한 차라면 보험을 드는 건 상식이다.

만일 보험이 없다면 엄밀히 따져 나는 차가 한 대 있다고 말할 수 없다.

99% 확률로 차 한 대,1% 확률로 고철 덩어리를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고가 나서 찌그러져도 1천만원,멀쩡해도 1천만원.

항상 내 차의 가치를 1천만원으로 고정시켜 주는 것.

그게 바로 경제학적 의미의 보험이다.

사고가 날 확률에 따라 보험료를 내니 가입자의 기대치는 제로다.

보험회사도 여럿한테 푼돈 받아 한 번씩 목돈 내 주니 평균적으로 본전 장사다.

이렇듯 금전적으로만 따지면 보험은 제로섬(zero-sum) 게임이다.

하지만 경제 전체로 보면 생활안정,고용창출 등의 효과가 있으니 윈윈(win-win) 게임이다.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 출발한 것이 선물(先物)이다.

쌀 1백 가마 수확을 몇 달 앞둔 농부는 가마 당 20만원 하는 현재 가격에 불만이 없다.

추수 때도 이 가격이라면 이리저리 비용 제하고 조금 남는다.

그렇지만 그 동안에 가격이 급락하면 큰일이다.

까딱하면 1년 농사가 허사다.

그래서 현재가격 정도에 미리 쌀을 사 줄 사람을 찾아 선도(先導) 계약을 한다.

몇 달 새에 천지개벽이 돼도 곡식대금 2천만원은 챙길 수 있도록 소위 위험을 헤지(hedge)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선도거래가 어떤 땐 손해가 나고 또 어떤 해에는 이득이다.

쌀을 미리 사는 양곡중개상은 그 반대 입장이다.

하지만 길게 보면 둘 다 금전적 손익은 제로다.

각각 가계와 사업의 "안정운영"이라는 득만 얻는 것이다.

따라서 선도거래가 제도화된 선물거래도 보험처럼 위험회피 측면이 있어 본질적으로 윈윈 게임이다.

문제는 이렇다.

가령 위의 농부가 선물시장에 쌀 1백 가마를 가마 당 20만원에 팔았다 하자.

선물 만기일에 쌀 1백 가마를 주고 돈 2천만원 받아 오는 계약을 했다는 의미다.

그리고 만기일 즈음에 15만원으로 쌀값이 하락했다.

이 경우 20만원에 선물을 매도해 둔 건 정말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그 쌀을 반드시 20만원 받고 선물시장에 팔 필요는 없다.

현물시장에다 15만원에 팔고,선물은 중도 청산해서 5만원은 현금결제를 받으면 된다.

결국 합해서 가마 당 20만원 받는 셈이니 경제적 효과는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놓고 보니 참으로 매력적인 사실이 발견된다.

"이거 쌀 없이 순전히 투기적으로 했어도 5백만원을 벌 수 있었던 거 아니야.더구나 선물은 차익만 결제하니까 돈도 2천만원까지 필요 없고.증거금 10%~20%,즉 2백만~4백만원 갖다 넣고 그 큰 돈을 벌 수가 있었던 거 아니야"

투기적 거래자들(speculators)의 구미가 당기는 대목이다.

여기서 선물은 곧 "떼돈"이라는 환상이 싹튼다.

그리고 위험회피는 커녕 짜릿한 "위험추구" 수단으로 점차 본질이 왜곡된다.

갈수록 헤져(hedgers)는 수그러들고 오히려 무슨 "물고기"니 "낙지"니 수중전투만 요란해진다.

이를테면 공부하라고 사 준 컴퓨터로 공부는 조금만 하고 종일 오락을 하는 형국이 되는 것이다.

지난주에 코스닥50선물이 출범했다.

금융강국의 미래로 또 한 발 나아간다는 생각에 정말 가슴 뿌듯하다.

그리고 여타 시장의 성장에 비추어 볼 때 이 시장의 성장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부디 본질을 망각하지 않고 품위 있게 커 가는 시장이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투자자들께 "위험관리" 네 글자를 늘 되뇌면서 매매에 임하시길 간절히 당부 드리고 싶다.

김지민 한경머니 자문위원.현대증권투자클리닉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