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폐장일인 26일엔 올들어 가장 매서운 한파가 몰아닥쳤다.

금방이라도 살점을 도려낼 듯한 기세로 달려드는 칼바람은 ''쪽박 증시''를 한탄하면서 한 해를 마감해야 하는 투자자의 가슴을 더욱 쓰리게 만들었다.

반토막이 난 주식잔고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한 중년신사는 증권사 직원에게 "내년에 봅시다…"는 허탈한 인사말만 남긴 채 조용히 증권사 객장을 빠져나갔다.

잔뜩 몸을 움츠린 그의 뒷모습에선 이렇다할 희망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새 천년이란 화려한 꿈을 안고 문을 연 2000년 증시는 ''개장일 주가가 연중최고치''란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면서 곳곳에 잔인한 상처를 남겨놓았다.

증권사 직원,객장 투자자 등 여의도 바닥 어디에도 폐장을 기념하는 행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연초 1,059에서 출발한 종합주가지수는 504.62로,266.00에서 시작한 코스닥지수는 52.58로 주저앉았다.

사상 최악의 한해였다.

뒤도 돌아보고 싶지 않은 경진년(庚辰年) 증시의 모습이다.

모두가 ''빨리 해가 바뀌었으면''하는 심정이 간절하다.

지난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색종이를 휘날리면서 화려하게 폐장행사를 한 증권거래소는 올해 아무런 공식행사를 기획하지 않았다.

''대학살''의 한해를 보낸 코스닥시장도 행사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입맛이 쓴 개미=26일 오후 3시30분 LG증권 서울 상계지점.객장 테이블 위엔 떡과 음료수가 놓여 있었지만 투자자들은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한다.

주부 이모씨(43)는 "내년에는 본전을 찾아야 하는데"라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소일(消日)거리로 객장에 자주 들른다는 박모 할아버지는 "올해에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연말 종가 맞히기 대회도 없느냐"며 씁쓸해 했다.

장병국 지점장은 "고객들이 대부분 담담하게 폐장을 맞았으며 내년 증시를 걱정하는 투자자들이 많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홈트레이딩으로 5백만원어치의 주식을 산 회사원 김모(35)씨는 "어차피 굴곡이 있게 마련인데 내년에는 올해보다 좋을 것 같은 예감에 주식을 샀다"면서 "내년 개장 때까지 좋은 재료가 나오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코스닥에 투자해 올해 원금의 80%를 날린 최모씨는 정부를 성토했다.

"거래소시장은 연기금을 동원해 지수를 방어해주고 코스닥은 왜 내팽겨두는지 모르겠다"는 것."벤처열풍을 조장해 개미들의 돈을 코스닥으로 끌어들인 정부가 이제와서 나 몰라라며 발뺌하고 있다"고 정부를 향해 화살을 쏘았다.

◆사라진 폐장행사=삼성 현대 LG 대우등 주요 증권사들도 별도의 폐장행사를 잡지 않았다.

한 증권사 홍보팀장은 "모두를 상처투성이로 만들어버린 올해 증시의 폐장을 기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증권거래소와 코스닥시장과 증권사 등은 폐장일과 달리 내년 1월2일 개장일에는 별도의 개장행사를 가질 계획이다.

거래소는 2일 오전 개장식을 가질 예정이며 이 자리에 재경부장관 금감위원장 등 외부 주요인사들과 증권사 사장들이 참석한다.

또 증권사들은 활황장을 상징하는 황소를 몰고 여의도를 행진하는 ''증시 대동제''를 갖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내년 1·4분기가 걱정=김석규 리젠트자산운용 상무는 "폐장일까지 증시가 맥을 추지 못했다"면서 "악몽같은 올 한해가 끝났지만 내년장도 간단치 않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은 "올해처럼 펀드매니저들이 시장에 처절하게 당한 경우는 없었다"면서 "이젠 내년을 다시 기약할수 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은 한결같이 내년 1·4분기 자금시장을 염려했다.

김 상무는 "정부가 구조조정을 잘해 내년 1·4분기의 자금난을 무사히 넘겨야 증시가 상승세로 돌아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 사장도 "내년 1·4분기가 큰 고비"라고 지적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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