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5일 기업자금 경색을 풀기위한 자금시장 안정대책을 내놓았다.

보증기관의 보증한도를 높이고 주거래은행이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에 대출해 줄때 부분보증을 서주도록 한다는 게 골자다.

이는 사실상 정부 재정(정부 보증기관)으로 기업에 자금이 수혈되도록 했다는 점에서 종전 대책보단 "업그레이드"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렇지만 "약발"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점은 종전 대책을 빼닮았다는 평가다.

봉합에 봉합을 거듭하는 정부대책이 회사채시장을 공전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따라 이제부터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장기적인 비전을 마련해야 할때란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우선 투신사를 비롯한 민간 금융회사가 회사채를 사 줄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하는 등 장기대책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신용등급별 또는 자산유형별 시장을 구축하기 위해 정크본드시장이나 ABS(자산유동화채권)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투신사에 돈 돌게 해야=회사채 시장이 제기능을 상실한 것은 지난해 7월 대우사태 이후다(조현준 나이스채권평가 사장).대우가 사실상 부도나면서 투신사 공사채형 수익증권에 가입한 투자자들이 손해를 입었으며 자금이 투신사로부터 이탈하기 시작했다.

투신사의 수탁고는 지난해 7월 이후 1년5개월 동안 1백조원이 빠져 나갔다.

이중 70% 이상이 회사채 매수자금이다.

이때 투신사의 실탄이 대부분 소모된거나 다름없다.

해법은 간단하다.

투신사가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되찾는 게 첫째다.

둘째는 투신사가 ''제대로 된 밥상''을 차릴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조성상 대한투신운용 사장은 "하이일드펀드와 CBO펀드에 편입돼 있는 투기채를 자산관리공사에 매각하거나 별도의 벌처펀드를 만드는 것을 생각해 볼 때"라고 말했다.

투신사에 부도위험이 있는 투기채를 어떻게든 해결하지 않고서는 신규자금 유입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투신사 관계자들은 "투기채 해결방안으로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신용보강이나 대체상품 판매 등은 문제의 완전해결이 아닌 시한연장에 불과한 미봉책"이라며 "이번 기회에 공적자금 투입 등 근본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와 함께 투명성을 높인 신상품을 도입하자는 견해도 있다.

펀드매니저의 독단적 운영을 제한하는 미국의 ''Unit Investment Trust''와 같은 펀드를 만들자(오승현 증권연구원 박사)는 게 대표적이다.

◆정크본드시장 육성해야=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22조원의 투기채를 정부 보증기관이 모두 보증을 서줘서 차환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분석된다.

은행에 돈이 몰린다고 해서 무작정 채권전용펀드에 갹출시키는 것도 문제다.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도 민간부문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으려면 투기채 발행 및 유통시장인 정크본드마켓(Junk Bond Market)이 육성돼야 한다.

이를위해선 신용등급간 금리차(스프레드)가 커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오승현 박사는 "미국의 경우 국채와 투기등급간 스프레드가 7백∼1천bp(7∼10%)로 형성돼 있는데 한국에선 5백bp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시가평가 조기정착시켜야=회사채는 신용등급이나 재무건전성,만기구조 등에 따라 각각 다른 가격을 적용받는 게 마땅하다.

그렇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정부는 지난 7월부터 신규설정되는 펀드에 대해 시가평가를 의무화했다.

그러나 실제 시가평가가 이뤄지고 있는 펀드는 많지 않다.

투신사의 경우 비과세고수익펀드와 일부 펀드만 시가평가를 받을 뿐 나머지는 추가형으로 피해가고 있다.

은행신탁이나 보험사,연기금 등도 시가평가가 제도화돼 있지 않다.

실상이 이렇다보니 정확한 가격에 기초해서 매매를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투기등급 채권의 경우 증권업협회가 중심이 돼 가격산정 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일부 투신사는 비과세고수익펀드에 편입될 후순위채의 가격을 좀더 높게 받으려고 채권시가평가회사에 압력을 넣고 있다는 말도 들려온다.

서종한 서울은행 자금부 부부장은 "IMF나 IBRD가 권유한대로 시가평가를 조기정착시키지 않는다면 채권시장의 정비나 선진화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