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금융지주회사의 구도를 그리지 못하고 있다.

당초 이달 하순에 금융지주회사의 밑그림을 내놓기로 했지만 아직까지 확정된게 없다.

지주회사를 1개만 만들겠다던 기본방침마저 지역정서 노조 정치권을 등에 업은 일부 지방은행들의 반발로 흔들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 주도의 지주회사가 거대한 ''부실덩어리''라고 비판한다.

시너지효과를 겨냥한 강력한 금융그룹이 아니라 부실금융기관들의 부실처리용 피난처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 의문시되는 시너지효과 =정부가 지주회사에 편입시키려는 금융기관은 한빛 평화 광주 제주 경남은행과 하나로종금(한국 중앙 한스 영남종금 통합) 부실생보사 등.

이들을 지주회사라는 ''핵우산'' 아래 묶어 경쟁력과 시너지효과를 키운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각 은행을 도매 소매로 분리해 특화한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하지만 관계자는 "막상 작업을 시작해 보니 적절한 ''조합''이 안나온다"고 하소연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지주회사가 시너지효과는 커녕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와 이질적인 조직문화가 만연하는 공기업식 폐해만 부각될 것으로 우려한다.

정운찬 서울대 교수는 "부실은행끼리 합하면 더 큰 부실은행을 만들 뿐"이라고 비판했다.

데이비드 코 IMF 서울사무소장은 "금융지주회사는 구조개혁의 해답이 되지 못하며 취약한 은행들을 더 크고 더 취약한 기관으로 만들 뿐"이라고 지적했다.

◆ 흔들리는 정부 방침 =정부 주도 금융지주회사가 하나가 될지, 둘이 될지도 불투명하다.

그동안 단일 지주회사를 공언했던 금감위 당국자들도 요즘엔 복수 지주회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금감위 입장에 이같은 기류변화가 감지된 것은 한빛은행 중심의 금융지주회사에 대한 광주은행의 반발이 예상외로 거센 것으로 확인되면서부터다.

특히 광주지역의 여론까지 가세하면서 광주은행의 기세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경남은행이 21일 적기 시정조치를 받아 광주은행이 주장하는 ''2개 지주회사론''에 상당한 명분까지 제공됐다.

이와관련, 일종의 캐스팅보트를 쥔 평화은행도 광주 제주 및 지방은행들과 독자 지주회사 설립을 정부에 건의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단일 지주회사에 들어가면 한빛은행에 흡수돼 형체가 없어진다는 우려에서다.

하지만 지방은행중 대구은행은 이미 독자생존을 선언했다.

심훈 부산은행장도 20일 기자간담회에서 "지방은행을 묶는 지주회사는 의미가 없다"며 불참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 때문에 최근엔 지방은행 전체를 독자 지주회사로 묶고 한빛은행과 매각대상인 서울은행을 묶는 아이디어도 거론되고 있다.

한빛은행이 자신이 지주회사의 주축이 될 것으로 예상하는데 대해 정부는 못마땅해 하는 분위기다.

◆ 경쟁력 확보가 관건 =전문가들은 지주회사의 구도가 어떤 형태가 되든 가장 중요한 것은 인원감축 등 경쟁력 확보방안을 세우고 이를 밀어붙일 수 있는 의지라고 강조한다.

공적자금 투입으로 정부가 주인이 된 만큼 주주권을 행사해서라도 ''원칙대로'' 처리하라는 주문이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정부가 지주회사로 묶는 은행들의 BIS 비율을 10%로 끌어올려 준다고 해도 과연 명실상부한 클린뱅크(건전은행)가 될지는 미지수"라면서 철저한 구조조정과 수익성제고 대책을 촉구했다.

채수일 보스턴컨설팅 서울사무소 부사장은 "(정부의 지주회사가) 명확한 가치창출이란 명분이 부족해 아쉽다"며 "외형만의 변화가 아닌 실질적인 개혁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