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어느 외국인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한국 시장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 끝에 우리 투자자들의 안부를 물어 왔다.

"Depressed or shocked?" 실의에 빠져 있느냐 아니면 충격에 쌓여 있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 대답을 머뭇거렸다.

매일 대하는 모습들이 어쩐지 그 두 단어와는 거리가 있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내뱉은 답이 "Out of their minds.(제 정신이 아니다)"였다.

멍하니 넋이 빠져 있다고 말하고 싶은데 달리 적당한 표현을 몰랐던 것이다.

그럭저럭 뜻은 전달했지만 여하튼 요즘 투자자들은 한 마디로 그렇다.

근심,후회,분노,절망감,조바심,죄책감 등에 너무 오래 짓눌려 이제 멍한 상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달을 줄기차게 시달렸으니 정신적으로 탈진할 때도 된 것이다.

자식들을 쳐다보면 미안해서 눈물이 절로 흐른다며 허공을 응시하는 주부.

몇 푼 안 남은 돈, 마저 다 잃고 칵 없어져 버리면 끝 아니냐며 비통해 하는 퇴직자.

그런 분들과 5분만 같이 있어 보라.

넋을 잃었다는 것보다 더 좋은 표현이 떠오르는지.

몇 년에 한 차례씩 어김없이 치르는 깡통 축제.

몇 해를 피땀 흘려 한 방에 태워 버리는 이 허망한 불꽃놀이를 언제까지 구경만 하고 있을 것인가 주식은 자기 책임 하에 하는 거라는 원론적 얘기만 하고 있기엔 국민들 고통이 너무 크지 않은가.

죄가 있다면 돈을 탐한 "욕심죄"밖에 없는데 그에 비하면 치르는 죄값이 너무 과하지 않은가.

물난리보다 수십 배 더한 물질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이 주식난리,더 이상의 방관은 곤란하다.

관련된 모든 이들이 순박한 투자자 보호에 나서야 한다.

말로만이 아닌 진정한 보호 말이다.

우선 양(兩) 거래소는 주식시장의 중요성 이전에 그 위험성부터 알려야 한다.

기업 자금의 직접 조달도 좋고 자본주의의 발전도 다 좋다.

하지만 그 모든 게 국민 잘 살게 하자는 건데 바로 그 국민이 와서 다 깨지고 가면 무슨 소용이 있나.

진심으로 그들을 위한다면 이 시장의 무서움을 솔직히 말해 줘야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돈을 잃었는지 생생한 통계를 보여 줌으로써 말이다.

감독기관도 할 일이 있다.

작전,허수 주문,내부자 거래 선량한 투자자의 치를 떨게 하는 이 사악한 것들을 영원히 멸절해야 한다.

손실을 본 게 아니라 농락을 당했음을 깨달았을 때의 그 충격과 분노 그걸 생각해서라도 솜 방망이 얻어 맞고 평생 팔자 고치는 이들이 다시는 안 나오게 해야만 하는 것이다.

언론도 도와야 한다.

깜찍한 신데렐라 스토리는 희망이 아닌 환상을, 미소가 아닌 피눈물만 싹 틔우지 않는가.

경이적인 수익을 올린 사람, 그 당시보다 그 이후가 훨씬 중요함을 깨닫고 끝까지 쫓아 가자.

그리하여 대부분 그들 영광은 실력이 아니라 운이었음을 증명해 보이자.

그래야 우리 투자자들이 떼돈을 좇는 꿈에서 깨어나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이 아닌가.

정부도 눈을 떠야 한다.

주가 하락을 염려하고 부양책을 쓰는 건 하책(下策)이다.

정부 아니라 그 누가 간섭을 해도 시장은 결국 제 갈 길만 간다.

괜한 수고 하지 말고 큰 그림을 그리자.성실한 우리 국민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황금만능주의,한탕주의를 어떻게 치유하고 국민 의식을 높일 수 있을지 보다 근원적인 고민을 하며 밤을 새우자.

끝으로 증권사들도 이제는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자.

직원들 코피 나고 고객들 망하는데 회사만 살찐다는 게 말이 되는가.

경쟁은 그만들 하고 이제는 진정 투자자를 위한 경영을 하자.

진정한 투자자 보호.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한 데 모아져야 한다.

김지민 < 현대증권투자클리닉원장 한경머니자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