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사회에서 OPEC의 위상이 다시 커지고 있다.

90년대말 OPEC 회원국들의 산유쿼터 위반과 속임수 증산으로 유가가 10달러 밑으로 떨어지자 OPEC는 국제사회에서 ''잊혀진 존재''였다.

그러나 OPEC가 일치단결, 감산을 통해 유가를 30달러대로 끌어올리자 세계는 OPEC의 위력에 새삼 놀라고 있다.

값싼 원유가 넘쳐나던 지난 1960년 9월14일 사우디아라비아 베네수엘라 쿠웨이트 이란 이라크의 주도로 OPEC가 출범했을 때만 해도 이는 단지 물량 과잉 공급을 막기 위한 수세적 성격의 기구 정도로 치부됐다.

하지만 OPEC는 출범 당시 세간의 속단을 비웃기라도 하듯 틈만 나면 세계경제를 흔드는 뉴스의 핵으로 떠오르곤 했다.

회원국도 카타르 리비아 나이지리아 인도네시아 등이 합류해 현재 11개국으로 늘어났다.

회원 가입을 위해 물밑접촉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 노르웨이 오만 등이 한 식구가 될 경우 OPEC의 위상은 더욱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사실 OPEC는 석유메이저들이 시장을 지배하던 1970년대 초반까지는 말그대로 ''종이호랑이''였다.

하지만 아랍진영과 이스라엘간에 전쟁이 발발하면서 지난 73년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맺은 ''유가결정협정''이 OPEC의 위상을 하루 아침에 바꿔 놓았다.

80년대 들어 원유 현물시장과 선물거래소가 발달하면서 유가결정의 주도권은 OPEC에서 ''시장수급''으로 넘어갔다.

당연히 OPEC의 기세도 한풀 꺾였다.

OPEC가 80년대의 무기력을 떨치고 화려하게 부활한 것은 무엇보다 ''공급조절정책''의 성공으로 고유가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OPEC는 작년 3월 감산을 결정, 98년 12월 배럴당 10달러를 밑돌던 유가를 1년반만에 36달러까지 끌어올렸다.

현재 OPEC의 하루 산유량(쿼터는 2천6백50만배럴)은 2천8백50만배럴 정도로 전세계 산유량의 40%를 차지하고 원유수출시장 점유율은 60%를 육박한다.

이는 OPEC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오일쇼크를 일으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신동열 기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