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를 녹여 경의선 철길을 깔자"

남북 정상이 서로 상대방을 침략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하고 위협행위를 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은 한반도에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첫걸음을 뗀 것으로 주목된다.

전쟁의 공포에서 해방되지 않고는 경제협력이나 이산가족 교류 등 남북공동선언이 "휴지조각"에 불과함을 두 정상이 인식한 결과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반도에 전쟁이 재발하면 민족공멸을 가져올 것이며 전쟁을 통해서 이룩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과거 대결시대의 구 정치인 같으면 이런 일(공동선언)을 못했을 것"이라며 대결구도 청산에 강한 의지를 비쳤다.

그러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곧바로 실현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난 14일 단독 정상회담이 끝난뒤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은 "두 정상이 <>남북한 화해와 통일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이산가족 상봉 <>경제.사회.문화 등 다방면에 걸친 교류협력 등을 합의했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남북공동선언문에서는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이 문제가 남북 당사자뿐만 아니라 미.일.중.러 등 주변 4강과 밀접히 관련돼 있어 그만큼 해결이 쉽지 않음을 반증하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은 미군철수를 요구했고 남측은 미국 등이 요구하고 있는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의 중단을 거론했지만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남과 북이 공동보조를 맞춰 주변 국가들을 평화정착의 "큰틀"로 묶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아태평화재단 김근식 연구위원은 "북한이 핵.미사일 포기 등 전향적 정책을 취하고 남한도 북-미간 수교와 북-일 수교를 용인하고 북한으로 하여금 무력도발을 포기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협조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북-미간 맺어진 "정전협정"도 남북한 당사자간, 혹은 미국 등이 참여한 "평화협정"으로 대체토록 하는 등 주변 강대국들과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군비감축을 비롯한 실질적인 조치들도 실천에 옮겨 "신데탕트"를 실현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북한은 김 위원장이 휴전선을 포함해 남한에 대한 비방을 중단하고 6.25 행사도 하지 않도록 지시하는 등 벌써부터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남한측은 대북 비방방송을 중지키로 했으며 군사직통전화 개설, 파괴.전복행위 금지 등의 조치를 취해 나가자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러한 화해 분위기에 힘입어 현재 1백17만명(북한)과 69만명(남한)인 병력을 절반수준으로 감축하고 탱크 전투기 등 군사력도 상호 줄여 나가는 문제까지 거론되고 있다.

방북수행단의 한 관계자는 "김 국방위원장이 지난 15일 환송오찬에서 "군은 가만 놔두면 상대방을 바라보다 주적개념을 갖게 되니 주적개념을 갖지 않도록 경의선 철도를 건설할 때 군을 동원하자"고 말했다"고 밝혔다.

군비감축과 긴장완화가 경제협력과 교류증진의 전제조건임을 남과 북이 모두 인정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