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5년부터 북한과 합영사업을 진행해온 A사.이 회사는 최근 대북사업을 "부득불" 중단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셔츠와 가방 재킷 등을 북한과 공동 생산해왔으나 최근 북측과 경영권 분쟁으로 사업을 더이상 진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B사의 경우 합영사업으로 정부승인을 받아놓고서도 아예 사업초기부터 합작으로 사업방향을 선회했다.

경영권 분쟁으로 사업이 중도 하차되는 일은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의도였다.

B사는 현재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C사는 합작이나 합영을 생각했다가 대북진출 선배 경영자들과 점심을 먹은 후 곧바로 임가공사업으로 돌아섰다.

아직 대북투자에 많은 돈을 쏟기에는 때가 이르고 당분간 "간단한" 협력사업이 적격이라는 충고를 들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의 전하는 대북 경협의 현주소다.

남북경협이라는 장밋빛 플래카드 뒤에 숨겨져 있는 초라한 현실이다.

지난 4월말 현재 통일부가 승인한 국내기업의 대북 협력사업 승인건수는 총 18건(1억8천3백만달러).이중에서 제대로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케이스는 겨우 5건 정도다.

더구나 북한 기업과 공동경영하는 합영사업은 드물고 합작형태가 주류를 이룬다.

그리고 수많은 기업들이 재료를 북한에 보내 이를 가공,다시 반입하는 임가공 형태의 초기 협력사업에 매달리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이처럼 북한 진출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대북투자 환경이 매우 불안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남북간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남북경협도 부침을 겪는다는 것.또 북한당국이 외부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할 만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93년 외자유치지역으로 "나진.선봉자유경제무역지대"를 설정했지만 이를 운영하기 위한 소프트웨어(법과 제도)와 인프라(도로 통신 항만)등은 미비하기 짝이 없다.

외자유치 관련법의 경우 10년이 지났지만 "나진.선봉경제무역지대법""외국인기업법""합작법""토지임대법""외국투자은행법"등 57건에 불과하다.

또 시행령등 관련 법을 뒷받침할만한 조치들이 거의 전무하다.

게다가 북한은 작년 14개의 외자유치 관련법을 개정하면서 투자환경을 "통제위주"로 바꿨다.

"외자유치 실적은 부진한데 비해 자유주의 사상이 유입되는 등 부작용은 크기 때문"(KOTRA 북한실 홍지선 실장)이라는 해석이다.

때문에 작년에는 외자유치 건수가 전무했다.

그나마 진행중인 사업은 "카지노"사업 정도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91년부터 외국기업들이 대북 투자한 건수(1백만달러 이상)는 총 36건에 불과했다.

액수로도 7억달러에 불과하며 이중 실제로 집행된 액수는 계약건수의 10%(8천8백만달러)에 그친다.

일부 조총련 및 중국계 기업들이 나진.선봉 경제특구 밖에서도 투자사업을 하고 있지만 무시할 만한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정상회담후 북한의 개방정책에 기대를 걸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근 방중 기간중 베이징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촌"에 들러 컴퓨터 회사 롄상의 공장을 40여분간 방문,컴퓨터의 연산처리장치와 서버및 최근의 기술개발 상황 등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연발해 주위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후 별도의 외자유치구를 설정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남포 신의주 원산 등지에 "보세가공구" 설치가 기대된다.

"임가공 형태이긴 하지만 북한이 이전과 달리 삼성전자(컴퓨터 조립)나 IMRI(모니터조립),성남전자공업(콤팩트 전구)등 하이테크산업을 적극 반기는 것도 주목할만한 변화"(평화자동차 김병규 차장)의 모습으로 확인되고 있다.

박수진 기자 parksj@hankyung.com

---------------------------------------------------------------

[ 알림 ]

남북정상회담 기획특집(53~60면) 일부 기사중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일자가 13일이 아닌 12일로 잘못 명기됐기에 바로잡습니다.

정부 발표 이전에 기획특집을 사전 제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이오니 독자 여러분들의 깊은 이해있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