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주가지수가 800선을 넘었던 지난 5월초, 정부는 주가상승이 너무
가파르다며 브레이크를 걸었다.

정부보유주식을 내다팔고 금리도 소폭 상승하는 것을 허용하겠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900선을 돌파할 때도 정부의 "구두개입"이 우려됐다.

그러나 주가는 "나의 길(my way)"을 외쳤으며 마침내 1,000포인트를 돌파
했다.

주가가 정부의 "딴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는 것은
한국에도 이미 "주식 자본주의(Stock Capitalism)"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합주가지수가 700포인트를 돌파한 이후 끊이지 않는 "버블.과열.과속논쟁"
은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서 오는 "시대착오"일 뿐이다.

시대는 이미 "주식 자본주의의 대.소순환"을 거쳐 주가상승을 이뤄내는
방향으로 패러다임 시프트를 끝낸 상태다.

옛날의 사고방식이나 분석기법으로는 현재 주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주가가 앞으로 어떤 흐름을 보일지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없다.

"새술은 새술에 담아야 한다"는 말처럼 "변화된 주가 1000시대에는 새로운
분석틀을 적용해야 한다"는 말이다(강신우 현대투자신탁운용 수석
펀드매니저).

주식 자본주의는 주가상승과 경기회복이 선순환 고리로 연결돼 물가가
안정된 상태에서 경제성장이 이뤄지는 것을 가리킨다.

98년말부터 시작된 한자리수 저금리와 금융기관 및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주가가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주가가 상승하면서 개인의 실질소득이 늘어나 소비가 증가하는 부의 효과
(wealth effect)가 생겨난다.

소비가 증가함에 따라 잔뜩 짓눌렸던 경기가 활성화되고 기업이익이 증가
한다.

이익증가는 주가상승으로 이어진다.

주가가 상승함에 따라 기업들은 주식발행을 통해 필요자금을 조달하고
이자금으로 기존의 부채를 갚는다.

경제성장률이 상반기중 5%를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물가상승률은
상반기중 "0%"라는 "기적"을 낳았다.

"저물가 속의 고성장과 고고용"을 뽐내는 미국의 "신경제(New Economy)론"과
비슷한 결과를 한국도 향유하게 된 것이다.

주식 자본주의의 선순환 고리가 작동하게 된 것은 두가지의 패러다임 시프트
에 의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나는 국내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세계적인 것이다.

국내적인 패러다임 시프트는 기업의 본질가치(intrinsic value)를 높이는
방향으로 기업경영이 바뀌고 있다는 점과 개인들의 자산운용이 예금에서
주식으로 바뀌고 있다는 포트폴리오 시프트로 나뉜다.

한국기업은 그동안 내재가치에 비해 크게 저평가돼 왔다.

잦은 정책전환에 따른 리스크(policy risk)와 과대채무에 의한 레버리지
리스크, 그리고 기업이익을 계열사나 오너에게로 빼돌리는 기업문화 리스크
(culture risk) 등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이런 관행이 고쳐지고 글로벌스탠다드에 의한 경영이 이뤄짐으로써 "기업
가치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주가가 한단계 도약하고 있다(이남우
삼성증권 이사).

개인들의 자산운용의 중심도 예금이나 회사채같은 확정금리 상품에서 주식
으로 대전환을 하고 있다.

확정금리 상품으로는 연 8%밖에 얻지 못한다.

반면 주식은 두자리수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은 "IMF 위기를 겪으면서 붕괴됐던 중산층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방법은 주식관련 상품에 가입하는 방법밖에 없다"도 단언한다.

전세계적인 패러다임 시프트는 국제투자자금의 재분배(re-allocation)로
요약된다.

동남아 통화위기가 러시아와 라틴아메리카로 확산됐던 97년 하반기부터
작년말까지 국제투자자금은 미국으로 몰려들었다.

안전한 곳으로 도피하기 위한 것(escape to quality)었다.

그런데 올들어 이런 자금흐름이 역전돼 한국과 대만, 인도, 홍콩 등 아시아
신흥시장으로 흘러들고 있다(박정구 새턴투자자문 상무).

주식자본주의 시대에는 주식시장 뿐만 아니라 경제전반의 틀을 바꾼다.

우선 경제.금융의 중심이 은행을 중심으로 한 간접금융에서 주식 채권시장
을 축으로 하는 직접금융시장으로 옮겨간다.

자본의 권력이동(power shift)이 이뤄지는 것이다.

주가 1,000시대는 이런 파워 시프트의 완성이자 주식 자본주의의 시작
이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은 파워 시프트에 따라 정부의 정책방향도 바뀔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것이 총통화(M2)를 중시하는 통화관리이다.

M2는 은행예금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은행예금은 더이상 경제의 핵심이 아니다.

무게중심은 이미 싯가총액이나 주식형 수익증권을 포함하는 총유동성(M3)
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도 은행이나 신용보증기금 등을
통하는 것보다는 코스닥시장과 거래소시장을 통한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전환돼야 한다.

지난 20여년간 지속돼온 유망중소기업제도가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근본적인 정책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97년6월 미국의 다우존스공업평균지수가 7,000포인트를 넘었을 때
그린스펀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주가가 이렇게 오를만한 이유가
없다. 최근의 주가상승은 버블"이라는 요지의 말을 했다.

이말을 비웃듯 주가는 계속 올라 현재는 12,000포인트를 눈앞에 두고 있다.

미국주가가 이처럼 상승한 것은 바로 주가상승이 주식 자본주의의 선순환
고리를 통해 주가상승을 이끌어 낸 덕택이었다.

영국에서 지난 70년대말부터 격렬했던 광산노동자의 파업이 원활하게
해결된 것도 주가상승으로 노동자들이 중산층으로 전환한데 따른 것이다.

< 홍찬선 기자 hcs@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8일자 ).